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사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무성하다. 우선 주무 장관이 '정전대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반면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데 여론 무마용으로 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변호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각 사퇴론은 병원 응급실과 엘리베이터의 전기가 끊겨 생명이 위협 당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한 초유의 정전사태에 대해 누군가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명한 인사 조치가 없다면 정전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최 장관은 현정부에서 가장 잘 나가는 관료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기획재정부 1차관, 주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으로까지 영전했다. 그의 빠른 판단력과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성과를 내는 업무 스타일이 이 대통령을 닮아 신뢰를 받는다는 평가도 있다. 사태 직후 여권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세운다'는 뜻의 고사성어 '읍참마속(泣斬馬謖)'에 빗대 '읍참중경' 의 필요성이 거론된 것은 이 같은 배경에 따른 것이다.
물론 최 장관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장관이 일일이 실무적인 책임을 진다면 누가 살아남겠느냐는 반문이다. 현정권에서 크고 작은 정책적 실수나 개인 비리 의혹에도 자리를 보전한 인사들을 생각하면 섭섭한 마음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장관에게는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최 장관이 즉각 해임됐다면 국민들은 정부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을 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를 동정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최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청와대의 애매한 태도다. 이 대통령이 한전 본사를 찾아 관계기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강조한 뒤 정치권을 중심으로 최 장관의 사퇴설이 비등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8일 오전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최 장관에게 거취에 대해 얘기했다"며 "오후에 예정된 최 장관의 기자회견의 성격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이 최 장관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장관은 오후 기자회견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러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임 실장이 최 장관에게 거취 문제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최 장관이 임 실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수정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정전 사태 뒷수습도 해야 하고 국회 국정감사도 받아야 하는데 신문 제목에 '경질'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최 장관이 출근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집요해지자 청와대는 결국 "최 장관이 선(先) 사태 수습 후(後) 사퇴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사실상 최 장관을 해임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아무리 정권의 레임덕(lame duck∙절름발이 오리)현상이 왔다고 하더라도 장관을 해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 대통령이 그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청와대 참모진이 이 대통령을 설득했어야 했다. 그래서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권 관계자는 "임기 말 권력누수를 뜻하는 레임덕은 외부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장관 거취 문제도 분명히 정리하지 못하면 '절름발이 오리' 징후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
김동국 정치부 차장 dk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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