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를 안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관객만 1,174만 명이고 비디오나 DVD, 다운로드를 통해 본 사람까지 합하면 족히 2,000만 명은 됐을 것이다. 순수 제작비 147억 원에다 2만여 명의 엑스트라와 탱크, 야포 등을 동원한 이 작품은 과거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대한 전쟁신을 선보였다. 그러나 구름처럼 관객이 몰린 진짜 이유는 이런 외형보다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서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 형(장동건)과 동생(원빈)의 형제애가 가슴 뭉클했기 때문이었다.
■형제 이야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우화의 단골 소재다. ‘추수를 끝낸 의좋은 형제가 서로의 어려운 처지를 염려해 밤에 자신의 볏단을 상대의 논에 옮겨놓아 아침에 보니 여전히 똑같았다’는 우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또 길에서 주운 금덩어리를 형과 동생이 서로 양보하다가 강물에 빠트렸다는 얘기도 어린 시절 감동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골육상쟁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왕조시대로 돌아갈 것도 없이 ‘현대판 왕조’라는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형제간 다툼을 보면, ‘가난한 집의 우애가 더 두텁다’는 역설이 맞는 듯하다.
■현 정부에서도 형님 문제는 내내 논란거리였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로 특혜의혹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배후로 의심받았다. 고위직 인사가 있고 나면 어김없이 “누구는 SD(이 의원 이니셜) 줄이다”라는 소문이 돌곤 했다. 이 의원은 무척 분개한다고 한다. 정치나 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원외교, 특사외교에 주력해왔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부채 125조나 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다른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300억원 적자가 예상되는 포항 동빈내항 사업을 강행하니, ‘형님 사업’이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권력의 장막 뒤편에 숨겨져 있는 형님들, 동생들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김중권 비서실장 중심의 신주류가 낙마하고 호형호제하는 동교동계가 청와대와 당을 접수하면서 친인척 비리가 생겼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적인 정전으로 큰 위기를 자초한 한전의 경우 11개 자회사 경영진과 감사 22명 중 17명이 현대, 대통령 인수위, TK, 고려대 출신이라고 한다. 이리저리 인연이 얽혀 평소 형님, 동생하던 사람들이 주요 포스트에 포진하면, 일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위기가 자라기 마련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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