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서울 용산구청은 그야말로 찜질방이었다. 1,522억원을 들여 지난해 3월 완공된 이 신청사는 건물골조와 바닥을 뺀 건물 외벽 전체를 유리로 감싼 '유리빌딩'. 화려한 미관만을 고려한 채 커튼 월(유리외벽) 공법을 무작정 따라 하다 보니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대표적인 에너지 비효율 건물이 됐다. 신청사를 찾았던 민원인은 물론 구청 직원들조차 찜통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과 관련, 우후죽순처럼 지어지고 있는 유리빌딩이 '전기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특히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유리빌딩 청사를 짓고 있어 에너지낭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태원(한나라당) 의원이 행안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새로 지은 신청사 대부분이 유리외벽 건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5년 이후 신축됐거나 건설 중인 지방자치단체 청사 21곳 가운데 19개, 공사 중인 7개 청사 중 4개가 4등급 이하 판정을 받았다. 3,222억원을 들인 경기 성남시 신청사, 1,152억원이 투입된 서울 금천구청 등도 대표적인 에너지 비효율 건물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리외벽 건물을 지을 경우, 빛은 투과하지만 열은 차단하도록 일반 유리에 비해 50% 정도 에너지 절감 효과가 높은 로이(low-e) 특수코팅유리를 주로 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로이유리 보급률은 10% 수준. 로이 유리는 코팅을 몇 번하느냐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 일반 유리의 2배 가량 비싸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국내 공공 및 민간건물이 로이 유리를 쓰지 않는 이유다.
이 같은 논란 때문에 최근엔 로이 유리를 사용하는 건물도 점차 늘고 있다. 내년 5월 완공 예정인 서울시 신청사의 경우, 유리외벽 건물임에도 삼중 코팅된 '트리플 로이'유리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민간에서도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을지로 SKT 본사, 경기 분당 NHN 본사,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상암 DMC국제비즈니스센터 등이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한 로이 유리를 사용했다.
한 건축전문가는 "미관을 중시하는 게 트렌드이긴 하지만 최근 유리건물비중은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라며 "발주자나 시공사나 외관과 에너지효율, 비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건물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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