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 등 유해성 논란이 있는 유리섬유관(GRP)이 7년 동안 전국의 상수도관에 사용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수자원공사(수공)는 GRP 상수도관에서 균열에 따른 누수 등 대규모 하자가 발생하자, 올해 신규 사업에 GRP 사용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수공이 GRP의 안전성과 건강 효과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 수백 억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유리섬유 생산업체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20일 수공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수공은 2004년 충남 공주시 2.3km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전남 담양, 충남 논산, 경기 고양 등 전국 45.5km 구간에 GRP 상수도관을 개설했다. GRP는 철강 제품에 비해 가볍고 내식성(耐蝕性)이 뛰어난 인조섬유로 가격도 강관 등에 비해 20%가량 저렴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외부 충격에 약해 쉽게 균열이 가는 등 광물질이 많은 국내 토양에는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의 경우 이런 이유로 2007년 GRP 도입을 포기했다. 현인환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상수도관은 국민 건강과 밀접한 만큼 신소재 도입 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며 "GRP는 균열 위험이 큰데다 선진국에서도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소재"라고 지적했다.
실제 수공이 GRP 상수도관을 개설한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2006년 통수(通水)가 이뤄진 진주 남강~통영(한산도) 간 13.06㎞ 구간에선 작년까지 10여 차례 누수가 발생, 통영시가 GRP 상수도관을 강관으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태다. 경기 고양시 1.51km 구간에서도 2007년 말 GRP 상수도관 구축 이후 수압시험 도중 이음새 부분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 또 따른 균열 사고를 우려해 수압을 높이지 못한 상태로 통수해 반쪽짜리 수도관으로 전락했다.
더 큰 문제는 국민 건강에 미칠 악영향이다. GRP는 유리섬유로 만들어져 균열이 생기면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수돗물에 그대로 흘러 들 가능성이 높다. 수공은 2001년 말 국제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유리섬유를 인체발암 가능성 물질인 '2B등급'으로 분류했는데도 GRP 도입을 결정했다. 황석하 한국석면환경협회 이사장은 "유리섬유는 인체에는 충분한 증거자료가 부족하나 동물에겐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3등급으로 분류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공도 이런 문제를 감안해 올해부터 높은 수압 탓에 균열 우려가 큰 700mm 이상 상수도관에는 GRP를 사용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통영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요구가 거세 GRP를 강관으로 전면 교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 설치된 GRP 가격만 52억원에 달해 시공비용 등을 포함하면 300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보인다.
수공 관계자는 "신소재 제품이라 도입 당시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며 "이미 통수가 이뤄진 구간은 균열 여부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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