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 간 우리 누나/ 그리운 누나/ 비 나리는 밤이면/ 더욱 그립죠// 그리운 누나얼굴/ 생각날 때면/ 창밧게 비 소리도/ 설게 들니오"
8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이 시는 소설가 황순원(1915~2000년)이 1931년 3월 19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누나생각'이다. 발굴되자마자 황순원의 작품으로 알려진 시 중에서 가장 초기작으로 등극하게 됐다.
경희대 김종회 국문과 교수는 20일 황순원의 동요와 시, 단편소설 등 미발굴 초기 작품 60여편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황순원의 작품은 지난해 9월 소개된 미발굴작 4편까지 포함, 동요ㆍ소년시ㆍ시 65편과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서평ㆍ설문 각 1편 등 모두 71편이다. 해당 작품들은 1930년대 전반에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일찍이 황순원은 "내가 버린 작품들을 이후에 어느 호사가가 있어 발굴이라는 명목으로든 뭐로든 끄집어내지 말기를 바란다"고 경계했지만 그의 제자 김 교수는 "선생의 뜻에 따라 미발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도 그간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후세의 학구열로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다"며 "이번에 총망라해 펼쳐 보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습작기의 초기 작품들은 서정적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초기 습작이지만 서정성ㆍ사실성과 낭만주의ㆍ현실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작가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발아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황순원은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부터 시를 짓기 시작해 이듬해 1931년 7월 '동광'에 발표한 '나의 꿈'으로 등단했다. 이후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로 문학세계를 넓혀 한국 현대소설의 전범으로 평가 받는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대표작은 '목넘이 마을의 개(1948)' '카인의 후예(1953)' '소나기(1959)' 등이다. 아들은 황동규 시인이다.
이번 발굴작들은 양평 황순원문학촌 문학관 내에 마련되고 있는 '황순원문학연구센터'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황 작가의 10주기 추도식에서 미발굴 작품 4편을 발표한 이후 약 1년간 추가 발굴 작업을 벌여 왔다. 해당 작품들은 오는 23일부터 경기 양평군 소나기마을에서 열리는 '제8회 황순원문학제' 문학세미나에서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