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고 또 줄여라.'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엔진 줄이기(다운사이징)' 경쟁이 치열하다. 기름 값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같은 양의 연료로 최대한 멀리 가면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연비 높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엔진의 다운사이징이다.
엔진 다운사이징은 기통 수와 배기량을 줄이면서 효율은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경우 ▦엔진의 크기가 작아져 차량 설계 때 공간 활용이 쉽고 ▦엔진의 출력과 연비를 높일 수 있는 한편 ▦매연 배출량까지 줄이는 '1석 3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당장 독일에서 열리는 제 64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바로 '다운사이징'이다. 각 업체들은 앞다퉈 새로 개발한 작은 엔진들을 선보였다.
포드는 1.6리터 엔진을 대체할 '1.0 3기통 에코부스트 엔진'을 발표했다. 포드가 지금까지 만든 엔진 중 가장 작은 엔진이다. 크기는 작아도 힘은 좋아서 118마력을 낼 수 있다. 포드에 따르면 70마력의 4기통 엔진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특히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 소비자들을 감안하면 포드의 다운사이징은 그 만큼 작은 엔진이 대세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드는 내년에 나올 '포드 포커스'부터 이 엔진을 적용할 계획이다.
유럽 최대 자동차그룹 폴크스바겐은 이번 모터쇼에서 '작은 것이 큰 것이다'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마틴 빈터콘 폴크스바겐 회장은 차세대 소형차 'UP'를 소개하며 "전략적으로 작은 차를 만드는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아우디 역시 4.0 TFSI 엔진을 장착한 S6와 S6아반트 모델을 선보였다. 이전 모델의 주류를 이뤘던 5.2 V10 엔진보다 크기를 줄인 것이 포인트이다. 이를 통해 신형 S6 모델의 연비는 기존 모델대비 26% 좋아졌다.
세계 최초로 공개된 포르쉐의 신형 911은 크기가 작은 3.4 복서엔진(실린더를 가로로 배치한 엔진)과 7단 수동변속기를 달아 연비 효율성을 15% 이상 개선하면서 최고 출력도 5마력 높였다. BMW는 이번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컨셉트 카 'i8'에 기존에 배터리의 보조 장치 정도로 쓰였던 3기통 엔진을 썼다.
현대기아차 역시 다운사이징 관련 신기술을 잇따라 선보였다. 3월 출시한 스포티지R과 최근 출시한 쏘나타 2.0터보 GDI에 쓰인 '세타 Ⅱ 터보 GDI'엔진이 대표적이다. 이 엔진은 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로 터빈을 돌려 새롭게 빨려 들어오는 공기를 압축하고, 압축된 공기를 다시 엔진으로 보내 큰 출력을 내는 터보 차저를 적용했다. 그만큼 고출력을 유지하면서도 낮은 배기량으로 연비를 크게 향상 시켰다.
또 하나가 직접분사 연소계 시스템이다. 고압의 연료를 연소실에 직접 분사하는 이 시스템은, 기존 포트 분사 방식과 비교해 높은 효율로 빠르게 반응한다.
사실 작은 엔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스즈키의 '스위프트(Swift)'와 제너럴모터스(GM)의 쉐보레 '메트로(Metro)'가 3기통 엔진을 달았다. 그러나 기름 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은 스포츠유틸리티(SUV)나 큰 차 쪽으로 관심을 돌렸고, 결국 GM은 1997년 메트로 생산을 중단했다.
최근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도 연료비 압박 때문에 과거와 확실히 다르다. 포드에 따르면, 8월에 미국에서 팔린 픽업 트럭 'F-150'의 57%가 6기통 엔진이 달려 있는 제품이었다. 2~3년 전만 해도 이 모델은 모두 8기통 엔진을 달고 있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올해 중국에 6기통 엔진이 장착된 럭셔리 카 '재규어 XJ 세단'을 내놓아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400대에 그쳤던 판매량이 올해 4,000대로 10배 가까이 뛸 것으로 보고 있다. 짐 팔리 포드 마케팅총괄 부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미국 시장 관련 수치를 보면 요즘처럼 기름 값이 중요하게 부각된 적이 없었다"며 "앞으로 몇 년 동안 자동차 업계에 작은 엔진 바람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