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정오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불 켜진 빈 방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소등을 하지 않은 탓이다. 텅 빈 법학관 1층 로비에서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23도로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같은 날 오후2시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 화장품 매장 직원이 한 여성 고객의 손등에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자 고객이 “손이 너무 차다”며 놀랐다. 가을용 긴 소매 재킷을 입은 직원은 “실내 온도가 낮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백화점 내부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
15일 대규모 정전사태를 겪고서도 국민의 전기 과소비행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동안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도 에어컨을 켜거나, 한낮에도 불을 환하게 켜놓은 풍경을 접하기 어렵지 않았다.
오후1시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설렁탕집은 전면이 통유리창이어서 빛이 잘 드는데도 기본조명 외 장식용 조명까지 매장 내 모든 조명이 밝혀져 있었다. 직원은 “24시간 영업이어서 계속 켜놓는다”고 말했다. 문이 열린 한 화장품 가게에 들어서자 에어컨을 얼마나 세게 틀었는지 입구에서부터 찬 바람이 불었다.
한 차례의 위기는 전기 절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부족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사용량이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평균치의 1.7배에 이를 정도로 전기를 펑펑 쓰는 나라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지나치게 낮은 전기 요금”을 꼽는다. 2009년 한국의 전기 요금은 OECD 국가 평균치의 절반에 불과했다. 특히 원가보다 크게 낮은 교육용, 산업용 전기 요금이 전기 낭비를 부추긴다. 현재 전기는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 심야전력으로 나누어져 있고 교육용과 일반용, 산업용 등은 주택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며 누진세도 적용되지 않는다. 주택용이 100kWh 이하 사용시 kWh 당 57.3원에서 출발해 200kWh 이상 사용시 175원, 500kWh 이상 사용시 670원으로 높아지는 데 비해 교육용은 사용량이 아무리 많아도 kWh 당 88.8원으로 계산된다. 일반용은 kWh 당 44~167.8원, 산업용은 44~120원이다. 가정에 비해 교육기관과 각종 산업ㆍ상업시설에서 전기 절약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고 용도별 요금 간 형평성을 회복해야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정한경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의 전기 요금체계는 교육용, 산업용 전기의 경우 많이 사용할수록 보조 받는 규모가 증가하는 구조”라며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는 것이 전력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국민 스스로 제2의 정전 사태를 막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시민연대의 차정환 부장은 “시민 의식을 고취하는 교육과 캠페인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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