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원 지원으로 한국문학 위상 높아져…현지 출판사 네트워크·사후 관리 등은 숙제"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21일 남산 '문학의 집 서울'에서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어 22,23일 이틀간 '한국문학 해외진출 10년을 말하다, 그리고 그 이후'를 주제로 제5회 세계번역가대회를 연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우리 문학 작품을 해외에 알리고 번역도서의 유통과 보급을 활성화하는 곳이다. 1996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금고가 2001년 문예진흥원 산하 한국문학 해외소개사업과 통합해 출범한 이래 ▦번역가 지원과 신규 번역가 교육 ▦국내 작가들의 해외 레지던스(체류) 프로그램 운영 ▦출판사와 에이전트 지원 등을 통해 우리문학을 해외에 알려왔다. 2001년부터 2011년 8월까지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 문학 작품은 28개 언어권, 486건에 이른다. 번역원 출범 전인 2000년까지 정부 지원으로 해외 수출된 문학 작품이 230여건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그 덕에 해외에서 한국문학의 위상이 꽤 높아졌다. 프랑스 필립피키에 출판사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 책임자인 임영희씨는 미리 공개한 번역가대회 발제문에서 "프랑스는 서구에서 한국문학 소개가 가장 활발한 나라"라면서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 , 황석영의 <손님> 과 <심청> 은 프랑스 주요 문학상의 하나인 페미나 에트랑제 후보작에 오르며 비평계와 독자들의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에 소개됐다. 특히 2006년 프랑스에 출간된 <심청> 은 외국소설로는 드물게 3쇄, 8,000부를 출간하기도 했다. 심청> 심청> 손님> 식물들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 김영하의 <검은 꽃> <빛의 제국> 등을 해외에 소개한 출판 에이전트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소설 시놉시스나 샘플 번역 과정에서 번역원 지원 기금을 받거나, 해당 언어권 번역자가 번역원 지원을 받아 출간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번역원 지원을 받는 언어권 국가일수록 해외 세일즈를 할 때 성공률도 높았다"고 덧붙였다. 빛의> 검은> 엄마를>
물론 한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책이 출간된 이후 '에프터 서비스'다. 흔히 문학작품을 해외에 소개할 때 중요한 요소로 번역의 질과 현지 출판사의 역량, 에이전트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꼽는다. 그런데 현지 출판사가 영세하거나 전문출판사여서 일반 독자들이 거의 알지 못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돼왔다. 독일 남서부방송2(SWR2)의 문학담당 기자 카타리나 보르하르트는 번역가대회 발제문을 통해 "2년 전까지 한국 책들은 페퍼코른과 펜드라곤 출판사 두 곳에서 출간됐는데 책의 품질 격차가 컸다. 또 책의 모양새가 비호감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3대 번역원장을 지낸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번역원 설립 당시 해외에서 한국문학이 거의 인식되지 못했다. 때문에 영세출판사에서 출간하거나 사후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작가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5년 오정희 단편집 <새> 가 프랑스 세이유, 2006년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 가 프랑스 갈리마르, 같은 해 황석영의 <손님> 이 미국 세븐 스토리즈 등 영향력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되며 우리문학을 알리고 있다. 손님> 칼의> 새>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 늘어나는 번역투 문체… '문학 한류' 이끌수 있나
흔히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번역의 한계를 꼽는다. 번역을 통해선 우리말과 감수성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외에서 그 진가를 모른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일까? 최근 문단에서는 애초에 번역을 의식해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소설가 김연수씨. 그의 작품은 번역가들 사이에서 '번역하기 좋은 소설' 1순위로 꼽힌다. 영문 소설을 한글로 옮긴듯한 번역투 문체 때문이다. 성균관대 영문과를 나온 김씨는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집 등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는 묘하게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버를 비롯해 트루먼 카포티, 피츠 제럴드 등 영미소설을 번역하며 글쓰기를 공부한 것과 닮아 있다. 원로문학평론가 김윤식씨도 비평집 에서 김씨의 번역투 문체를 하루키와 비교, 분석한 바 있다.
김씨는 2009년 7월호에 번역투 문체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어는 영어보다 감정적 표현에 매우 뛰어난 언어다. 대신에 영어는 사실적 표현에 적합한 언어다.(…)미국 독자들에게 영어로 옮겨진 한국소설은 사실적 표현이 결여된 문장처럼 읽힐 것이다.(…)나는 번역 가능성을 떠나서 한국 소설의 문장이 사실적 표현을 지향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편혜영씨는 주인공 이름과 배경 장소를 익명 처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장이 간결하고, '그'나 '그녀' 같은 인칭대명사를 자주 쓰는 것도 특징이다. 이 역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편씨는 올해 봄호 대담에서 "새 장편을 연재하면서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유진'인데, 이 이름은 한국인 이름이기도 하고 외국인 이름이기도 하다. 특정 성(性)이나 국적이 연상되지 않는 이름이다"고 밝혔다.
작가들의 이런 전략이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까. 긍정적 평가가 없지 않지만 번역가 등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김영하의 독일어 번역으로 올해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은 양한주 독일 보훔대 교수는 "영어식 문체를 쓰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독일문학계는 이를 비판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문학작품은 내용뿐 아니라 작가가 속한 사회문화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작가는 고유문화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출판 에이전트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해외시장에서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와 서사를 통해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라고 말했다. 신경숙의 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모성이란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의 근현대 전경이란 특수성이 잘 조화된 작품이기 때문이며, 큰 맥락에서 볼 때 문체는 그리 큰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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