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어느 교수의 조카는 장래가 촉망되는 어린 축구선수다. 그는 아직 중학생에 불과하지만 유럽의 최고 명문 팀에 스카웃 되어 훈련을 받으며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유럽 축구팀의 훈련 원칙이다. 오후 6시부터 딱 한 시간만 축구연습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배우는 즐거움 잊고 사는 학생들
숙식과 장학금, 생활비까지 받으며 예비 선수로서 생활하는 이 어린 축구 선수에게 유럽의 축구 코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고, 축구는 하루에 단 한 시간 동안만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하루 종일 그야말로 지겹도록 축구만 했던 그 교수의 조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축구가 더욱 재미있어져서 한 시간의 축구 연습 시간이 주어진 동안에 그야말로 열심히 연습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럽의 명문 축구 팀은 어린 선수들을 훌륭한 선수로 키우는 데에 나름의 뚜렷한 교육철학과 방법론이 있음을 느꼈다. 소질이 있는 어린 선수들을 뽑아 밤낮으로 훈련을 시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거금을 투자한 예비 선수들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면서, 하루에 단 한 시간 동안만 축구를 하도록 하는 것은 장기적 안목을 지닌 고도의 동기유발 전략이다. 이는 예비 축구선수들이 균형 잡힌 사고와 능력을 갖춘 원만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물론 축구의 즐거움을 오랫동안 갖게 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즉 예비선수들은 축구를 잘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에 한 시간 밖에 축구를 못하도록 하면, 그들은 나날이 축구가 더욱 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예비 선수들은 그들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 즉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많은 축구 선수 지망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그저 하루 종일 좋건 싫건 볼만 차도록 강요 받는다. 축구만 해서 축구특기자로 진학을 하고 마침내 프로 선수가 된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소질을 즐기면서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일까.
축구 선수뿐만 아니다. 주변의 아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가 재미없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마음이 아픈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조차도 여름방학을 마치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이다. 단 한 학기의 학교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낀 것일까. 도대체 왜 학교가 아이들에게 이토록 힘든 곳이 된 것일까. 세계 수십 개 국가의 15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3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PISA(국제학업성취도 평가)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 최하위권으로 나타난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은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친구들과 운동을 많이 했다고 얘기한다. 요즘 각종 국제지표에서 높은 성취도를 나타내어 교육계의 관심의 초점이 되는 핀란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알도록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자란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 비교하거나, 등수를 매기지 법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은 경쟁과 비교 속에서 찌들고, 어린 아이들도 학교에 다녀오면 늦은 밤까지 사교육에 휘둘리고 있다.
유럽의 명문 축구팀 비결 배워야
이제는 우리도 유럽의 명문 축구팀에서 아이들을 훌륭한 선수로 키우는 비결을 배울 때다. 밤낮으로 무섭게 훈련을 시키면 보통의 선수, 평균을 조금 넘는 선수로 키울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뛰어난 세계적인 축구선수와 축구 지도자를 키워내려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일'로서 계속 간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조급을 떨면서 아이들을 쥐어짜면 짤수록,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잃을 것이다. 어른들의 조급함으로 아이들의 배우는 즐거움을 빼앗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배우는 즐거움을 잃은 아이는 성공하기도 행복하기도 힘들 터이니.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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