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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22> 장군의 아들 김두한, 국회 오물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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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22> 장군의 아들 김두한, 국회 오물투척

입력
2011.09.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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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22일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이 자리한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0 국회의사당. '특정재벌 밀수 사건에 관한 질문'이 상정돼 이틀째 대정부질의가 열리던 이곳에 무소속 김두한 의원이 거구를 이끌며 단상에 올라섰다. 마분지로 둘러싼 상자 하나를 내려 놓은 채 질의를 이어가던 김의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식하기 때문에 말보다는 주로 행동에 옮깁니다. 불의와 부정을 알고도 눈감아 준 썩어빠진 장관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하겠습니다."

상자를 들고 정일권 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앉아 있던 자리로 다가선 김 의원은 "이건 국민이 주는 사카린이니 골고루 나눠 먹으라"고 외치며 인분이 섞여있는 오물을 와락 끼얹었다. 정 총리와 장관들은 피할 틈도 없이 오물을 뒤집어썼고 아수라장이 된 의사당은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로 가득했다. 이른바 '국회 오물투척사건'이다.

66년 5월, 국내 굴지의 재벌이었던 삼성 계열의 한국비료가 건설 자재를 가장해 수 천 만원 상당의 사카린 원료를 밀수입한 사실이 적발됐다. 국세청으로부터 추징금만 받고 사건이 흐지부지된 사실이 그해 9월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되자 국민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회본회의가 열렸고, 한독당으로 등원했으나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김두한 의원은 힘겹게 발언권을 따냈다. 그리고 결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거사'를 성공한 것이다.

신문로 자택으로 돌아간 그는 집 앞에 몰려든 기자들에게 "준비한 오물은 전날 밤 33인의 독립열사들의 혼이 서린 파고다공원 담을 넘어 공중변소에서 퍼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본인의 집 화장실에서 비서와 함께 준비한 것이었지만 파장을 극대화하고 명분을 쌓기 위해 정치적인 발언을 했던 것이다.

파장은 컸다. 한국비료는 국가에 헌납됐고 정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총리공관에 모여 내각 총사퇴를 결의했다. 이효상 국회의장은 김 의원의 제명을 발의했고 김의원은 24일 국회의장 모욕 및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자신이 별장으로 지칭하던 서대문 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국회는 특위를 구성해 재벌 밀수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섰으나 여야의 대립으로 별다른 결말 없이 끝나고 말았다.

국회의원보다는 장군의 아들이자 협객으로 더 알려진 김두한. 정치적으로는 몽상가였을지 모르나 불의를 질타하는 의협심은 당당하고 의연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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