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기아자동차 미디어 행사장에는 구름 인파가 몰렸습니다. 맞은편 행사장의 2층 관람석까지도 발 디딜 틈 없었죠.
대성황의 이유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 때문이었습니다. 슈라이어 부사장의 손에서 만들어진 4도어 럭셔리 스포츠 세단 'Kia GT'와 '신형 프라이드 3도어(수출명 리오 3도어)'를 덮고 있던 천이 걷혀 차량외관이 공개될 때마다 관람석에선 "와~"하는 찬사가 흘러나왔습니다.
행사장에선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06년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삼고초려 끝에 슈라이어 부사장을 어렵게 영입했던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정 부회장은 아마 "그때 슈라이어를 정말 데려오길 잘했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슈라이어 부사장이 온 뒤 기아차의 디자인은 정말로 확 바뀌었습니다. 특징 없이 밋밋했던 기아차 디자인은 '호랑이 코'로 잘 알려진 패밀리 룩(통일된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해외 유명 디자인 상을 휩쓸었습니다. 소울 K5 K7 등 연속 히트작을 내며 2007년 16조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23조원을 넘어섰고, 생산량도 처음으로 200만 대를 넘겼지요. 오죽하면 "기아차 역사를 '비포 슈라이어'와 '애프터 슈라이어'로 나눠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이니, 더 설명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정 부회장의 마음 한 켠에는 걱정이 있습니다. 디자인에 관한 한 승승장구하는 동생(기아차)과 달리, 형(현대차)의 사정이 녹록치 않아서죠.
현대차의 디자인은 올해 초까지 미국연구소(HATCI) 소속 필립 잭 수석 디자이너가 이끌었습니다. 2009년 GM의 유럽 디자인 총괄로 일하다 현대차로 영입돼 신형 쏘나타와 아반떼 등을 만든, 개성강한 디자인 철학을 가진 인물이지요. 그런데 그가 '친정'인 GM로 돌아갔고, 이후 현대차엔 몇 달째 디자인 총사령탑이 없는 상태입니다. 크리스 뱅글 전 BMW 수석 디자이너 영입을 위해 공을 들였지만, 그마저 삼성전자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차는 힘도 중요하고, 연비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디자인의 영향력도 절대적입니다. 승승장구하는 현대차이지만, 하루 빨리 최고의 디자이너를 영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