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지난 15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ㆍ부당노동행위로 판정된 사내 하도급(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징계와 해고에 직접적이고 계획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내하도급업체 관리자의 업무노트가 공개됐다.
이 노트는 현대차가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의 실질 사용자라는 충남지노위의 결정(한국일보 9월16일자 12면)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현대차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제기할 예정인 재심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지금까지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은 사내하도급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인사노무관리를 하고 있어 원청업체인 자신들이 직접 고용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18일 현대차 아산공장 의장부문 사내하도급업체 A사의 관리자 B씨가 지난해 12월부터 9개월여 동안 기록한 업무노트의 사본을 공개했다. B씨가 지난해 12월6일부터 이달 7일까지 상황을 일기와 회의록 형태로 기록한 이 업무노트에는 '현대차의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인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의 징계, 해고, 휴직처리 등 각종 노무관리와 이들에 대한 감시, 회유 등을 현대차가 직접 지시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나와있다.
이 노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3일 A사 노동자 C씨가 입원한 것을 해당 업체가 연월차로 처리하려 하자 현대차 관리자는 증빙자료가 없으면 무단결근 처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올해 1월14일에는 현대차 관리자가 A사에 파업관련 손해배상 청구 가압류 대상자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릴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는 불법파견을 적법하도급으로 은폐하려 한 정황도 상세히 나와있다. 자동차제조 공정에서 (불법)파견과 사내하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는 사내하도급업체가 자체 노하우로 만든 작업 표준서ㆍ사양(仕樣) 별표 등으로 작업하고 있는지 여부다. 그러나 노트에 따르면 올 2월8일 현대차 관리자가 사내하도급업체들의 관리자를 모아놓고 현대차의 로고가 찍힌 사양 식별표를 업체명이 찍힌 사양 식별표로 변경하고 월ㆍ주ㆍ일 단위 노동자 관리대장의 명칭도 현대차에서 각 업체들의 것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현대차가 파업을 하지 않은 비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은밀히 후원한 정황도 기록돼있다. 지난해 12월21일 A사는 파업을 하지 않은 비노조원들과 회식하는 데 275만원을 사용했는데 현대차 관리자가 이 비용을 그 달 '기성금'(원청에서 하도급업체에 내려 보내는 돈)으로 처리하기로 약속한 일이 기록돼있다. 노트에는 이 밖에도 충남지노위가 불법파견 여부를 조사할 무렵 현대차가 하도급업체에 관련 서류를 폐기하도록 지시한 사실 등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고의로 은폐하려 한 정황도 담겨있다.
금속노조는 "이 노트는 현대차의 사내하청업체들은 유령회사들에 불과하고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진짜 사용자라는 명백한 증거"라며 "현대차는 더 이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공개된 업무노트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며 "현대차가 노무관리나 인사 등에 관여하거나 지시한 바가 없으며 협력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노트의 원본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