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뛰어넘는 '강수'였다. 금융당국의 칼은 업계 2, 3위 대형 저축은행까지 도려냈다. 퇴출 후보로 거론되던 대형 저축은행들이 막판에 일부 제외되긴 했지만, 전체 영업정지 저축은행도 7개로 당초 시장 전망보다 많았다. 이번에야말로 뇌관을 확실히 제거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승부수로 평가된다.
올해 초 9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과정에서 드러난 저축은행들의 믿을 수 없는 재무제표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5% 이상의 정상 저축은행이 하루 아침에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영업이익도 대규모 흑자에서 적자로 반전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7월 초부터 85개 저축은행에 대해 대대적인 경영진단에서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저축은행들의 재무 상태를 낱낱이 공개하고 털고 감으로써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회계법인 등에서 무려 338명의 전문인력을 차출해 저축은행 경영진단에 투입했다.
실제 이번 진단 과정에서 저축은행의 불법행위가 상당수 적발됐다. 주재성 금감원 부원장은 "부산저축은행처럼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대주주가 자기 사업을 한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타인 명의를 이용해 대주주에게 돈을 빌려준 사례 등이 다수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번에도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BIS비율은 경영진단 전후 급전직하했다. 토마토저축은행의 BIS비율은 작년 6월 말 9.45%에서 올 6월 말 현재 -11.47%로 추락했고, 제일저축은행도 8.22%에서 -8.81%로 떨어졌다. 특히 인천 에이스저축은행의 BIS비율은 무려 -51.10%까지 폭락했다.
물론 금융당국 안팎에선 자산 2조원이 넘는 대형 저축은행은 어떤 식으로든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자산 규모 2, 3위인 토마토저축은행과 제일저축은행의 고객 수를 합치면 무려 39만명에 예금액은 6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돈이 한꺼번에 묶일 경우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당했다. 막판으로 갈수록 대마불사(大馬不死) 가능성이 높게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칫 대형 저축은행이라는 이유로 구제를 해줬다가는 이번 경영진단 전반에 대한 불신만 키울 것이라는 반론도 비등했다. 결국 대형사를 포함해야 퇴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더 힘을 얻으면서 자구계획에도 불구하고 토마토, 제일 등 대형 저축은행까지 포함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혹시 윗선의 다른 지시가 있었더라도 경영진단팀에 참여한 실무진의 감시망을 비껴나기가 어려웠다"며 "실무진이 본인의 직을 걸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계 일각에선 여전히 대마불사 논란이 나온다. 간신히 영업정지를 면한 6개사 중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저축은행이 3개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금융당국은 "강도 높은 자구계획의 대가로 봐 달라"고 설명하지만, 결국엔 수위 조절의 결과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실을 다 털고 가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시장이 어떻게 평가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1차 시험대는 저축은행들이 문을 여는 월요일(19일)부터 주초 며칠 간이 될 전망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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