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전 여당 원내대표가 반값등록금 화두를 던질때만 해도 이런 결과로 막을 내릴 것이라 예상한 이는 드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반값등록금으로 확대 재생산된 것은 수긍이 갔다. 주요 이슈를 선점한 야당에 더는 밀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당정은"또 다른 포퓰리즘 아니냐"는 비난에도 눈 딱 감고 '반값등록금'에 아예 대못질했다.
그런데 이후 벌어진 양태는 한 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조계의 지적을 뒤로 하고 감사원이 사립대를 등록금 감사 무대에 올려 놓았다. 대학 입장에선 '영원한 갑(甲)'의 존재인 교육부까지 감사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집단 저항 따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여기까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등록금 인하 총력전에 돌입한 정부의 몸부림 정도로 봐줄만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들의 학비 인하 바람을 외면하는 건 국가의 도리가 아닌 까닭에서다. 그렇더라도 흡사 전면 압수수색 같은 먼지털기식 감사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까칠한 시선이 물러나기도 전에, 이번엔 교육부가 사단을 냈다.
졸속으로 이뤄진 사립대 평가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15곳을 합쳐 43곳의 재정지원 제한 대학을 발표해 버렸다.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 대체 뭔가. 정부 돈을 받지 못하는 학교들이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대학"이라는 교육부 설명이지만, 외부에서는'부실 대학'으로 낙인 찍어 버렸다.
교육부는 일련의'등록금 대책 시리즈'의 하나로 재정지원 제한 대학을 공개했을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겨냥했음직 하다. 이를테면 해당 대학들에겐 강력한 구조조정을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론 등록금을 낮출 것이고, 자율화를 요구하면서 뻗대는 대학들을 길들이기 위해서도 이만한 채찍은 없다고 확신했을 터다.
취지와 필요성은 십분 인정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 공개되자마자 해당 대학들이 온통 초상집인 것은 드러난 현상의 일부분일 뿐이다. 흡사 '연좌제'처럼 신입생들의 학자금 대출이 규제를 받고, 정부 지원이 끊겨 돈줄이 꽉 막히게 생겼는데 가만 있겠는가.
핵심은 이런 대학들을 걸러낸 평가의 적절성과 정당성, 그리고 타이밍이다. 취업률이나 재학생 충원률 같은 주요 평가 지표는 정부 지원을 중단할 만큼 구조조정이 당장 필요한 대학을 걸러내는 충분 조건이 아니다. 직장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취업의 잣대로 삼아 취업률을 평가하는 발상이 놀랍다. 이러니 '엉터리 평가'니, '짜맞추기 평가'니 하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 아닌가.
구조조정 대학을 추리는 최대 척도는 재정 건정성이어야 했다. 재단과 학교 통장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학교 주인이 수익용 재산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지, 뭐 이런 것들을 따지는 게 최우선시 됐어야 했으나 쏙 빠졌다. 학교의 발전 가능성과 향후 비전 등을 보는 정성 평가를 안 한 이유는 왜 인가.
구조조정 유도가 지상과제였다면 '진짜 부실 대학'부터 정했어야 옳았다. 부실 대학→ 학자금 대출제한→ 재정지원 제한 대학 순이어야 했는데 거꾸로 갔다. 국립대를 제쳐두고 사립대부터 메스를 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옥석 가리고 정치(精緻)함 보여야
시기 역시 좋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대입 수시모집을 코앞에 두고 발표한 것은 대학과 수험생들을 모두 죽이는 치졸한 행위다. 구조조정 대상 대학엔 지원하지 말라는 메시지였겠지만, 대학 지원이란게 성적 따라 가게 마련이어서 수험생들에겐 혼란만 안겨줬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누가 이런 평가를 주도했느냐이다. 그 흔한 시뮬레이션 한번 안 하고, 조급증이 눈에 보이는 평가를 밀어붙인 인물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평가 결과 발표 뒤 대학별로 개선 노력이 나타나고 있어 긍정적"이라는 교육 수장의 언급은 현실을 호도했다. 생존을 위한, 어쩔 도리 없는 제스처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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