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이 온다. 1990년대 신문에서 지상파 방송으로 옮겨간 매체 영향력이 케이블로 이동중이다. Mnet에서 방송중인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K3'는 방영 2회차만에 지상파를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최고시청률 14.6%는 지상파 오디션 프로그램인 MBC의 '위대한 탄생'(15.8%, 이상 AGB닐슨 집계)에 약간 뒤지지만 인터넷이나 DMB가 빠지는 집계 방식을 감안하면 케이블의 승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 오디션 참가자 숫자로도 케이블의 압도적 승리다.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권력이동이 더 실감난다. 지상파 예능이 연예인의 신변잡기와 체험으로 채워지는 반면 케이블은 주변에서 어쩌다 보는 기이한 사람들('화성인 바이러스') 시시콜콜한 일상이 주는 웃음('재밌는 TV 롤러코스터') 비만을 고민하고 이웃의 성공을 시기하고 험담하고 아부하며 때로는 찌질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진짜 인간들의 드라마('막돼먹은 영애씨'. 이상 모두 tvN)를 찾아내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케이블은 어떻게 이렇게 강해졌을까. 방송가에서는 케이블계 최고참 프로듀서이자 프로듀서들의 조련사인 송창의(58) tvN본부장의 예능 창조 공식이 비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히피였던 청춘시절이 그 비결의 뒷심이라고 말한다.
_원래 MBC 시절(1977~2000년)부터 남다른 프로그램을 만드셨지요? 클리셰의 파괴라는.
"그렇게 말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고(웃음) 남들하고 똑같이는 안 하려고 애썼어요.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할 때는 모두 콩트 코미디를 할 때라 주병진 노사연 이경규씨를 들여서 토크쇼를 시작했고 '특종TV연예'를 할 때는 집단MC 제도를 도입했고 '남자 셋 여자 셋'을 할 때는 작가와 피디가 각자 작품 줄거리를 만든 뒤 최종적으로 시청자 반응을 논의하면서 대본을 재창조하는 방식을 도입했어요. '세친구'는 최초의 성인시트콤이었고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할 때는 방청석과 무대를 하나로 만들었고 심지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맡아도 관행이던 흰색 뒤편 가림막을 없앴어요."
_지금은 모두 전통이 된 것들이네요. 케이블에 와서도 그런 원칙을 지킨 건가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공식이 있거든요. 그 공식은 시청자들이 좋아해서 만들어져요.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청자들이 그 공식을 지겨워하는데도 계속 그 공식을 따라가거든요. 그래서 그걸 발견하고 약간만 바꿔 줘도 시청자들이 반응을 합니다. 이걸 저는 반박자의 공식이라고 부르는데, 2006년에 케이블로 와서 강조한 것이 새로운 것을 하자, 유사한 것보다 안 하던 것을 하자."
_가령….
"당시 텔레비전이 모두 개그콘서트를 하길래 우리는 다르게 접근하자고 해서 '롤코'가 나왔고 토크쇼는 왜 다 소파에 앉아서 하느냐 싶어서 '택시'에서 하는 토크쇼가 나왔고 6미리 카메라로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를 만들자고 했더니 '막돼 먹은 영애씨'가 된 거예요. 조명 깔고 제대로 카메라 돌아가고 그러면 영애씨가 화장실에서 뱃살을 잡고 흔드는, 그런 생생한 장면이 나오기 힘들어요."
_형식이 달라지면 내용도 달라진다, 그런 건가요?
"인상파 그림이 나온 것은 튜브형 물감과 기차 덕분이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야외로 자주 나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빛을 살리는 그림이 나왔듯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면 새로운 형식을 던져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_새로운 공식을 찾아내는 비결이 있나요?
"우선 기존 프로그램을 쭉 훑어봐요. 그러면 기존의 공식이 보이거든요. 그걸 뒤집는 거지요. 왜 퀴즈를 하면 사회는 남자가 보고 여자는 문제를 읽느냐, 왜 사회자는 남녀로만 되어 있나, 왜 코미디는 저렇게 만들까… 어찌 보면 시시껄렁한 건데 맨날 그걸 지키는 거예요. 그걸 다 전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매너리즘을 한 두 가지만 바꿔줘도 굉장히 새롭게 느낍니다."
_새로운 것을 할 때는 반대도 있지요?
"반대도 많이 받지요. 시청률이 나와주니까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늘 선배들이 조마조마하다고 했어요."
_다른 사람들이 반대할 때도 꿋꿋할 수 있는 힘은?
"청춘을 제대로 겪어서? 요즘 청춘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청춘에게 관대한 시절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어디에도 없었어요. 청춘을 청춘이게 하는 것은 젊은이 자신인 거지요. 청춘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기성세대가 선사하는 게 아니에요."
_어떤 걸 제대로 된 청춘이라고 보는 거예요?
"청춘이 의미가 있으려면 좀 아파봐야 해요. 청춘이라는 게 다 성숙이 안된 상태인데 그걸 賈?빨리 기성품을 만들려고 하니까 진짜 성숙이 안되는 거에요. 이런 걸 나는 사금파리를 껴안아라, 이렇게 말하는데. 진주를 만들려면 사금파리를 껴안고 사는 시기가 필요하잖아요. 치기라고 해도 좋고 '꼬장'이라고 해도 좋은데 남들보다 더 거창한 주제로 고민도 해보고 남들 앞에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더 어려운 책도 읽어보고 전위의 예술에도 빠져보고. 청춘을 겪으면 기성세대가 되어서 새로운 것을 해볼 때 덜 무서워요. 그런데 세상 무서운 걸 먼저 알아버리면 실제 와서 해보려고 할 때 무섭고 그래서 결국은 똑같은 걸 해보게 돼요."
_젊은 시절에 히피였다고요.
"대학(서강대 신방과) 2학년 때인데 친구가 집에 있는 팝송 음반을 갖고 와서 학교에서 음악회를 열었어요. 그때까지 저는 라디오에서 해주는 '건전 팝송'만 듣던 사람인데, 이 음악을 듣고 완전히 빠졌어요. 친구가 이런 음악 더 듣고 싶으면 가자고 해서 홍대 앞에 있는 음악다방 카타리나를 소개해줬는데 그때부터 아예 학교 수업은 거의 안 듣고 여기서 살다시피 했어요. 머리는 기르고 옷차림도 완전히 히피들하고 똑같이. 그때는 교련수업이 필수라 듣지 않으면 졸업이 안되는 거였는데 사랑과 평화를 사랑하는 히피가 어떻게 군사훈련을 받겠냐고 해서 교련수업조차 안 들었어요. 그때는 장발 단속을 했기 때문에 머리를 잘리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나가면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더더욱 카타리나에서 살고. 아니면 홍대 미대 애들 화실에 가서 전위적인 그림 보고. 책도 남들이 보는 건 안보고 현대문학전집 같은 것 읽고. 나중에 생각하면 이게 인문학 공부가 된 셈이에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머리를 기른다는 이유로 어떤 교수는 학생들 뺨을 때리고 경찰이 잡아다가 머리를 마구 자르고. 그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싫었어요. 나쁜 것과 싫은 것은 다른데 자기가 싫은 것을 나쁘다고 하니까."
_그런 게 나중에 피디를 하면서 영향을 미쳤나요?
"'특종 TV연예'를 할 때, 수북히 쌓인 데모테이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듣고는 이거 새롭다 싶어서 국내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소개했어요. 얘네들이 처음 나올 때 옷에 상표도 안 떼고 나왔잖아요. 다른 피디라면 방송이니까 상표 떼라고 했을 겁니다. 저는 딸한테도 그래요. 너 하고 싶은대로 살아라, 하지만 딱 하나만은 지켜라.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 하지 마라. 그건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거니까 나쁜 거다."
_사실 나쁜 것과 싫은 것을 많이 혼동하지요.
"고등학교 때 화학 선생님이 다음 학기부터 선생님한테 바라는 것을 쓰고 반에서 제일 떠드는 애를 쓰래요. 그러더니 저를 교무실로 불러요. 네가 반에서 제일 떠드는 애로 선정됐다, 나는 네가 공부를 제일 못하든 꼴지가 되든 그건 상관 안한다, 대신 떠드는 놈은 남한테 피해를 주는 놈이기 때문에 네가 너네 반에서 제일 나쁜 놈이다, 그래요. 그 때 제가 크게 깨달았지요. 사람들은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면 비난을 해요. 자기가 보기 싫은 거지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문신이나 피어싱을 비난하는 사람이 못생겼으면 그것도 나쁜 거예요.(웃음)"
_집안 분위기는 자유로웠나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히피나 장발을 싫어하셨다는데 저한테 뭐라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저희 부모님이 무학이신데 아버지는 영등포시장에서 싸전을 하고 어머니는 살림만 하니까 6남매한테 다 알아서 하라는 주의였어요. 영등포구 당산동에 살았는데 지금으로 보면 완전히 시골이라 집 앞에 냇물도 흐르고 고추밭도 있고. 제가 학교를 두 살 일찍 들어가서 4학년이면 열 살도 안됐는데 어머니가 저를 (경운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어요. 학교를 가려면 새벽 네 시에 깨야 돼요. 전철역까지 40분을 걷고 전철 타고 두 시간을 가고. 천둥벼락이 치고 진눈깨비가 내려도 한번도 부모님이 데려다 준 적이 없어요."
_히피 시절이 아니라 그때 체험이 피디의 자질을 키운 것 아닐까요?(웃음)
"누가 저한테 제 멘토가 누구냐 그러면 내가 먹은 콩나물 시금치도 다 내 멘토다, 그래요. 부모님, 선생님 내가 만난 친구들 내가 본 영화, 내가 들은 음악, 극장 앞에서 보낸 어린 시절."
_극장을 자주 갔습니까?
"영등포에 극장이 세 개 있었는데 주말이면 연예인들이 와서 극장식 쇼를 했어요. 극장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우니까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극장 앞에 진치고 앉아서 연예인들 등퇴장 하는 거라도 보려고 했어요. 여기 들어갔다 걸리면 1주일 정학인데도 사전을 팔아서 여길 갔어요. 당시만 해도 다들 양복입고 노래 불렀는데 정원이라는 분은 빨간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뒤를 구겨 신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여기에 완전히 빠져서. 그러니까 제가 원래 인디 취향이었나봐요."
_2011년에 매체들이 깨버려야 할 공식이 있다면?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행동패턴이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린백(lean back 뒤로 누운)'시대라면 이제는 '린포워드'(lean forward 앞으로 숙인)'시대거든요. 소파에 누워 리모콘 들고 방송사가 주는대로 보던 시청자가 아니라 인터넷 앞에 앉아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 찾아보고 댓글 다는 시청자입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기다려요. 방송도 연극도 신문도 린포워드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가 미디어 싸움의 승자가 되겠지요."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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