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북부 초원지대에 사는 나그네쥐(레밍)가 대규모로 이동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만화에서 보았을 것이다.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레밍들'은 비이성적인 무리 본능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사실 레밍이 큰 무리를 짓는 것은 드문 일이다. 10년에 두세 차례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강의 지류를 따라 하나둘씩 모여들다 서식지의 경계가 무너지며 대규모 무리를 이루게 되고, 무모한 레밍의 행진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구촌과 이스터 섬은 닮은꼴
그래서 사람들은 과밀집 상태에서 지도자 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다 결국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들이 집단 자살하는 진짜 이유가 밝혀진 것은 최근이다. 레밍이 먹는 사초(莎草)과 식물에는 쥐의 소화액을 중화시키는 물질이 들어있는데, 레밍의 개체수가 늘어나 이들이 먹는 풀의 양이 많아지면 이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방어물질을 더 많이 생산한다. 그러면 레밍은 먹은 것을 소화하지 못해 체력이 소모되고 닥치는 대로 풀을 먹다가 끝내 해안가 절벽에까지 이르게 되고, 먹이를 찾아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레밍의 집단 자살은 이처럼 맹목적인 추종이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그들의 먹이 식물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유발한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레밍의 개체수가 줄면 이곳에 사는 흰부엉이의 수도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흰부엉이는 주식인 레밍의 수가 적은 해에는 아예 둥지를 틀지 않아 번식을 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이렇게 스스로 보호하고 적절한 규모를 유지해나간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은 다 아는 이런 비밀을 우리 인간만 모른 체한다.
이스터 섬은 그 비극적 결과를 잘 보여준다. 자원의 지나친 개발로 인해 스스로 붕괴한 사회의 전형이 이스터 섬이다. 거석상(모아이)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은 칠레 해안에서 3,700km나 떨어진 외딴 섬이다.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에서 이스터 섬의 붕괴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인간의 환경 훼손이다. 삼림 파괴와 조류의 멸종으로 인해 이스터 섬에서는 단 한 종의 나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결국 인구의 90%가 사라졌다. 다른 하나는 정치, 사회적 요인이다. 더 큰 석상을 세우려는 부족들간의 경쟁으로 인해 주민들은 거석상의 조각에 매달렸고, 더 많은 나무와 밧줄, 식량을 소모했다.
다이아몬드는 완전히 고립된 이스터 섬이 현대 세계와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거석상의 크기로 경쟁한 11개 부족은 세계화한 경쟁 체제에서 자원을 낭비하는 현재의 지구촌 모습과 흡사하다. 또 이스터 섬 사람들은 곤경에 빠졌을 때 피신할 곳이 없었다. 지구가 우주에서 고립된 것처럼 이스터 섬은 태평양에서 고립돼 있었다. 게다가 맨손과 돌연장뿐이었던 수천 명의 섬사람들이 숲을 사라지게 하고 사회까지 붕괴시켰는데, 강력한 기계와 중장비로 무장한 수십억의 인구라면 훨씬 큰 재앙을 낳지 않겠는가.
불확실성 세상 대처 능력 키워야
갑자기 정전이 되던 날, 그날은 9월 15일이었다. 3년 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바로 그날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하지만 전속력으로 항진하던 타이타닉 호의 운명처럼 언젠가는 부딪칠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풍자는 음미해볼 만하다. "이 세상에는 '알려진, 알려진 것들(known knowns)'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세상에는 또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known unknowns)'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unknown unknowns)'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것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불확실하며, 우리 인간은 얼마나 무지한가.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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