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니께서 아침 저녁 찬 바람이 부니 아이에게 구충제 먹여야 하지 않냐고 물으셨다. 구충제.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하긴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이맘때면 엄마가 기생충 잡는 약이라며 동그란 알약을 먹으라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설마 구충제까지야 싶다가도 아이 일이다 보니 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까지 기생충 감염률이 80%를 넘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구충제를 복용하는 등 적극적인 퇴치로 마지막 국가통계를 낸 2004년엔 4.3%까지 확 떨어졌다. 김미영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별도의 검사가 의미 없을 정도로 미미한 감염률"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젠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나 주변에 감염됐던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구충제를 먹이면 된다. 하정훈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하정훈소아과의원장)은 "아이가 가렵다며 엉덩이 쪽을 자꾸 긁으면 기생충 감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들이 아니면 예방 차원에서 굳이 구충제를 찾아 먹일 필요는 없다.
예전에 먹던 구충제는 기생충을 자극해 몸 아래쪽으로 이동하게 만든 다음 대변과 함께 배출시켰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구충제는 작용 메커니즘이 다르다. 기생충이 포도당을 흡수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주로 사람의 소화기관에서 사는 기생충은 포도당으로 위액이나 소화액에 대해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점막을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 구충제 때문에 포도당을 흡수하지 못한 기생충은 점막을 만들 수 없어 위액이나 소화액에 몸이 녹아버린다. 그 상태로 대변으로 배출되면 원래 형체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사실 기생충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요즘도 나오긴 나온단다. 하 부회장은 "최근 가장 많은 기생충은 요충"이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처럼 어린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생충 감염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손 씻기와 침구 청소다. 특히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다녀온 뒤엔 꼭 손을 씻는 습관을 들여줘야 한다. 익히지 않은 고기나 생선, 흐르는 물에서 제대로 씻지 않은 채소나 과일을 먹는 것도 기생충 감염의 주요 경로다.
어머니께 전문가들이 구충제 안 먹여도 된다 했다고 말씀 드렸다.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하셨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옛날 세상과 요즘 세상 비교할 일이 잦다. 불과 이삼십 년 전인데도 달라진 게 참 많다. 그러면서 실감한다.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하고.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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