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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보의 블랙아웃이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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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보의 블랙아웃이 더 문제다

입력
2011.09.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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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개봉한 미국 영화 ‘블랙아웃(Blackout)’은 갑작스런 정전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물이다. 어두움과 밀폐된 공간이라는 극적 장치에 사이코패스(연쇄살인마)까지 더해져 공포감을 자극하는 얘기다. 15일 오후 초유의 전국정전 사태로 숱한 시민들이 영화처럼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가 있었다. 부산에서만 179건의 승강기 갇힘 사고가 일어나 849명이 119구조대에 구조됐다. 전국에서 1,900여건의 승강기 사고가 있었다니 어림잡아 9,000~1만 명이 살 떨리는 공포감을 맛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모두가 한국전력의 예고 없는 단전 조치로 빚어진 일이다.

늦더위에 대응한 한국전력의 전력수요 예측에 문제가 있었고 매뉴얼을 무시한 단전 조치에 대해 말들이 많다. 하지만 기자는 한전의 조치와 불가항력적 측면에 대한 해명을 상당부분 수긍한다. 한전의 날씨 분석과 수요 예측에 어떤 안이한 판단이 있었는지 명백히 가려야 하겠지만 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일 뿐 악재가 겹친다든지 하는 변수를 항상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다.

전력공급의 속성상 예비전력이 바닥날 경우 전체 전력공급의 중단 위험성이 있음을 감안하면 경계단계(예비전력 200만㎾ 이하)에서의 부분단전 조치를 무턱대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당시 예비전력은 148만여㎾로, 단전 조치가 가능한 심각단계(예비전력 100만㎾ 미만)가 아니었다지만 매 순간 변하는 전력수요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전력수요 상승 추이와 위험 회피에 대한 한전의 현장 판단을 더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측면에서 상부 기관(지식경제부)에 단전 보고를 사전에 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한가하다. 비상상황에서 ‘선조치 후보고’는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노상 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큰 문제는 국민과 소비자를 장기판의 ‘졸(卒)’로 본 정부와 한전의 행태다. 전국 발전량과 송ㆍ배전을 통제하는 한국전력거래소가 전력수요 폭증에 따라 30분 단위의 지역별 순환 단전 조치를 취한 것은 15일 오후 3시. 이후 전국 곳곳에 정전 사태가 나 소방서에 구조 요청이 잇따랐고 교차로 신호등이 꺼지며 대혼란이 야기되기 시작했다. 전력거래소가 순환단전 조치를 지식경제부에 알린 게 그로부터 10분 뒤이고, 정작 보도자료로 발표한 것은 무려 1시간50분 뒤인 오후 4시50분께다. 어떠한 자구(自救) 기회도 주지 않은 채 2시간 동안 국민을 온전히 위험에 노출시켰다. 제대로 된 정부와 공기업이라면 국민이 위험 회피를 위한 예방 내지 자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게 정상인데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전 측이 매뉴얼에 따라 이동통신사 등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 공장에만 단전 조치를 사전 통보했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한전이고, 정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 행위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문에도 늑장 통보에 대한 사과는 아예 들어 있지도 않으니 알 권리에 대한 이 정부의 인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겠다. 정보의 블랙아웃이 정부에 대한 중대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정진황 사회부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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