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에게 "중소기업과의 공생발전 방안을 마련해 실천해 달라"는 권고와 함께 사실상의 '공생발전 가이드라인'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8ㆍ15 경축사에서 밝힌 공생발전의 후속조치 차원으로 해석되지만, 재계는 "말이 권고지 사실상 압력"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공정위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기업들이 관행적으로 계열사에 수의계약 형식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업계, 관련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모범거래관행'(best practice)을 정착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업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실무 차원의 아이디어를 4대 그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전달한 아이디어는 ▦1억원 이상 계약 때 반드시 경쟁입찰을 실시하고 ▦특히 광고, 시스템통합(SI), 건설, 물류 등 4대 분야는 전체 계약금액의 50% 이상을 경쟁입찰로 체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입찰선정위원회 운영과 내부감사 강화 ▦역량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계약물량의 30% 이상을 발주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4대 그룹에 공정거래 관행을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자율적 선언을 권고했다"며 "선언을 하려면 기초자료가 있어야 하는 만큼 공정위의 기본구상을 전달하고 여기에 4대 그룹이 의견을 첨삭해 좋은 방안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4대 그룹 외에 다른 대기업에도 권고할 지는 추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권고를 받은 4대 그룹은 하나같이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가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율 선언을 강요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공생발전 원칙에 공감하지만 아직까지 (선언과 관련돼)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다음주 정부와의 간담회 전까지 논의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LG, SK그룹도 "취지에 공감하지만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은 21일 10대 그룹 경영기획실장(구조본부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공생발전 실행방안을 점검할 예정이다.
점잖은 공식 반응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정부가 하라는데 어쩔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와 함께 "현실을 모르는 무리한 요구"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경쟁입찰은 모르겠지만 그 중 30%를 중소기업에 의무 할당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SI는 보안 문제가 걸리고, 건설 분야도 영업기밀 관련 사안이 많은데 무조건 외주 비율을 높이라는 것은 실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정위 방침을 정면 반박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미 기업별로 공생발전 취지에 부합하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런 사업은 기업 자율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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