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는 말하는 대로 행동… 공자님 말씀의 모델 보는 듯"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했던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아픈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이 행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사회에서 크게 주목 받았다. 특히 안철수 원장이 갑작스레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청춘콘서트 현장은 취재진이 진을 치는 정치현장으로 변했다. 지난 9일 오후 경북대에서 열린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행사는 막을 내렸지만, 그 여진은 크다.
기자가 박 원장을 만난 것은 청춘콘서트가 막바지로 향하던 지난달 말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박 원장에게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추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에게서는 "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해 추가 답변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는 그렇게 '안철수 신드롬'이 나타난 이후의 현안에 대해서는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초 인터뷰에서 청춘콘서트와 안 원장, 그리고 박 원장 자신에 대한 충분한 질문과 답변이 있었던 터라, 이후의 세세한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_ 안철수 원장과 함께 진행했던 청춘 콘서트가 큰 인기였다.
"처음에는 조용했으나 어느 순간 제이커브(J curve)를 그렸다. 서울지역 말고 지방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열패감이 있다. 그래서 그쪽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공감이 있었다. 2년 이상 안 교수와 지방 순회를 했다. 처음에는 특정 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하다가 점차 인근 대학 학생, 일반 청년들에게까지 개방을 하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대학생만 청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재능기부라는 차원에서 안 교수와 여름휴가를 반납하기도 했다. 등록금, 청년실업, 양극화 문제 등 이슈가 많았다. 학생들과 대화하는 노하우를 쌓게 됐다. 당초 한 달에 한 번 하다가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게 됐다. 강연 신청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로 신청자들이 많았다."
_ 안 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안 원장은 나보다 2년 위다. 사회에서 2년 차이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다. 물론 의사 사회는 위계질서가 강하다. 하지만 안 원장은 위계 사회에서 함께 일하는 사이가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존중한다. 사람들은 말을 꺼내놓고 60~70%를 이행하려는 노력만 해도 비교적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는다. 대개 말만 앞서고 결국은 말과 다른 행동을 해버린다. 하지만 안 원장은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고지식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지식함이 보여주는 어떤 봉우리가 이런 거다'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자님 말씀 많이 들었다. 지행합일 등등. 그를 보면서 '이 양반이 바로 그 모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안 원장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한 것은 3년 정도 됐다. 그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이 사람은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가 말한 대로 간다.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옆에서 지켜보니까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해도 믿게 되더라. 이것이 신뢰의 힘이다. '믿어주세요 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랜드마크형 인간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는 기준이 필요하다면 안 원장이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그 분한테 항상 좋은 공부를 한다. 만나면 만날수록 벤치마킹을 할 게 있다.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때에 따라서는 말을 하다가 서로 허허 웃을 만큼 나랑 공통점들이 많다. 물론 나보다 식견이 탁월하다. 숫기 없는 분이지만 청춘콘서트 할 때는 집사람보다 훨씬 많이 만났다. 일주일에 3번씩도 만났다. 3년 동안 만나면 한번쯤은 사이가 삐걱거릴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어떤가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죠?'라고 대화한다. 아예 마음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 물론 경륜은 내가 비교가 안 된다."
_ 청춘콘서트의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이었나.
"주제는 매주 바뀐다. 취업, 직장, 재능, 사회문제, 개인문제 등. 지리산에서 혼자 농사를 짓지 않는 한 우리는 사회와 관계한다. 그래서 정치 사회 경제 문제 등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자기개발, 개인 문제, 개인적으로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 사회에만 맡기고 개인은 할 것이 없는가 등에 대한 것을 주제로 논의한다. 나머지는 기회, 고용, 미래, IT 등의 주제를 잡는다. 세상일을 우리가 다 아는 것이 아니므로 관련 이슈에 대한 전문가를 게스트로 초청해서 안 원장과 내가 질문하고 그 분들이 답하는 형식이다. 물론 학생ㆍ청년들보다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얘기한다."
_ 운영은 어떻게 하나.
"서포터들이 많다. 처음에는 대학의 범주를 벗어나니 어려움이 많았다. 대학에서 초청하면 대학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준다. 우리는 가서 말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테두리를 벗어나니 스크린이나 마이크도 준비해야 하고 장소 대관도 해야 했다. 이메일로 일일이 확인해서 입장권도 발급해야 한다. 하부조직이 없는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하다 일단 집단지성을 믿어보자고 결론을 냈다. 서포터들을 모아보면 10명씩이라도 있지 않겠나라고 생각했는데 지역마다 150명씩이나 서포터스들이 등장했다. 설치, 안내, 부스팀, 접수팀 등등으로 나뉘어 하루 전에 그들이 회의하고 다음날 온종일 활동했다. 대관하는 문제는 마침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도와줬다. 평화재단은 통일과 평화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세미나를 한 노하우가 있다. 법륜 스님을 만나서 요청을 했다. 경비는 안 교수와 내가 부담을 했다. 하지만 진행과정에서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모금함에 몇 천원씩을 냈다. 덕분에 처음에 안교수와 내가 냈던 돈이 남았다. 서울 친구가 대전 친구를, 대전 친구가 부산 친구를, 부산 친구가 광주 친구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발성이 생긴 것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데 이같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때에 따라서는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를 우리 기성세대의 눈으로 만만하게 보고 있구나, 하는 반성이다. 그들은 자발성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대중에게 오와 열을 맞추도록 하려 하지만, 오히려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중의 요청에 이끌리거나 흐름에 순항을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강연만 들으면 될텐데 땡볕에서 고생하며 강연을 듣고 나가면서는 돈을 낸다. 우리를 돕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기 세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런 젊은 친구들에게 동기만 부여해 준다면 폭발적이 될 수 있다. 생각보다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반죽을 생각해봤다. 밀가루에 물을 부으면 반죽이 된다. 우리가 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청년들에게는 자생적이고 거대한 흐름이 있다. 생각보다 유연하고 놀라웠다.
특히 나이 많은 어른들을 모시고 얘기할 때 고리타분해할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 청년세대와 노인세대가 서로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데 누가 이걸 단절시켰는지 모르겠다. 소외된 층은 오히려 노인층과 청년층이고 우리 세대가 바통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하고 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에 '가슴을 두드렸다'는 등의 뒷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사회에 원로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 세대다. 사실은 그분들의 지혜를 전달해야 할 우리 세대가 스스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_ 보람이나 특히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많다. 중ㆍ고등학교 강연을 특이하게 많이 했다. 내가 6년 전에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병원 이야기를 썼는데 이게 중고생들 필독서로 선정됐다. 필독서 저자를 초대해서 특강을 하는 경우가 고등학교에서 많았다. 처음에는 애들이 자더라. 자는 애들을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우리 어법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법으로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점점 애들을 대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나중에는 고등학생들이 체육복에 사인해달라고 했다. 그 충격과 기쁨이 굉장히 크다. 내 아이 말고 다른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그 친구들이 대학생 된 뒤에 찾아온다. 그때 영향을 받아서 신경외과 의사가 됐다는 등의 얘기를 들으면 기쁘다. 이들이 10년, 20년 뒤 내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라고 말해주면 즐거울 것 같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위로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좋은 책, 명언은 넘쳐난다. 대개 비슷한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로를 받는다. 또 '저 사람 꽤 바빠 보이는데 우리를 찾아왔다'는 것이 그들에게 다소 위로가 된다.
강의를 가면 먼저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내가 기성세대의 대표는 아니다. 하지만 선배들에게 좋은 바통을 물려 받았다. 우리는 취직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좋은 바통을 그들에게 넘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말에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쉽게 요즘 애들은 도전정신이 없고 스펙만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경험은 그들의 경험과 다르다. 부?자식도 서로 다른 경험 때문에 단절된다. 우리 세대는 '만화방 가면 안된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PC방 가면 안된다'로 바뀌었다. 우리 세대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감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청년은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이들은 절벽 앞에 세워놓고 뛰어내리라는 얘기로 알아듣는다. 요즘 들어 공감이라는 말이 키워드다. 위로는 말이 아니라 공감에서 오는 것이다."
_ 김제동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제동이를 보면서 나의 10년 전을 생각했다. '내가 10년 전에 저 친구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봤을까'라는 의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 문제만 봤다. 대개 사람들이 한숨 돌리면 뒤돌아본다. 30대 후반에 저런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연예인, 진행자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진정성, 경우에 따라서 자기에게 상당히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시선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내 10년 전을 돌이켜보면 섬뜩하다. 앞으로 10년 뒤 지금을 돌아보면 '저것밖에 안됐던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통상 30대 후반 정도에는 자기 문제에 천착한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외부로 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나한테만 얘기해 보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뭐 있나, 마약 먹었나, 뭐 때문에 사회에 대해 이런 시선을 가지게 됐나'라는 것이었다. 그는 균질성이 있고 자기 삶의 성장과정에서 성실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습관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만나면서 성숙해졌다. 나도 그를 만난 지는 1년밖에 안됐다. 하지만 어느새 새벽 1시에 전화를 해도 부담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이 친구는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열리고 애정이 생겼다. 마른 스펀지 같은 친구다. 물을 쭉 빨아들인다. 내용물이 크다. 그를 보면서 10년 전을 돌아보며 자기반성도 한다."
_ 강연은 1년에 몇 차례나 하는가.
"정말 많이 한다. 하루종일 화장실에 한 번도 못가는 날도 있다. 그래서 순서를 정해놨다. 대개는 교육기관 1순위, 공공기관 2순위, 가장 순위가 밀리는 것이 기업이다. 공공기관은 주민이나 공무원이 참여하지만 레버리지 효과가 있다. 이 분들과 고민을 1% 같이 하면 이들은 1,000명, 1만명을 상대하는 것이라 레버리지 효과가 있다. 강연 말고도 기조연설을 하거나 발표하는 것까지 치면 일주일에 나흘 정도는 하루종일 바쁘다. 돈은 안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내게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이 분에 넘친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의사를 하다가 독특하게 다른 쪽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 거절을 해야 하는 강연 등도 수없이 많다.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발언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름이 좀 알려지다 보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살아가면서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 다른 사람들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건 지장 없다. 방송도 나가고 칼럼도 열댓 개 쓴다. 강연도 한다. 집 사람도 의사다."
_ 정치권에서 눈길을 주는 모양인데.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토대가 있고 깃발이 날린다고 하자, 깃발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걸레나 손수건들이 깃발로 걸리는 게 문제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토대다. 우리는 자꾸 깃발만 바라본다. 깃발을 누가 흔드느냐에 관심이 많다. 다만 국민들이 잘못하면 걸레를 매달 수도 있다. 반면 잘만 하면 좋은 깃발을 달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토대를 탄탄히 하는 것이다. 나는 깃대와 토대 사이에 장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토대로서 깃대를 세우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치 할려면 지난번에 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 되는 게 중요한 꿈이라면 지난번에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안했는데 지금 다시 할려고 하겠나. 나는 똑똑하지도 않지만 바보도 아니다. 트위터 팔로어가 30만명이 넘었다고 해서 그런 유혹에 넘어갈 이유는 없다. 내가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를 잊어버릴 만큼 바보는 아니다. 단지 먼 미래의 일은 내가 알 수 없다. 안 교수는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내 쓰임새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 경제가 어렵다. 청년실업, 주가폭락 등으로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
"심각하다.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인간이 퇴로가 차단되면 위험하다. 신창원이 자살을 시도한 것도 그렇다. 우리는 다 독방에 갇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지만 다 타인이다. 동창회 향우회 동호회 등등 1인당 수십개씩의 모임이 있다. 이는 고독에 대한 절규다. 그 와중에 단 한 번이라도 진심을 털爭塚?기회가 있었을까. 그만큼 진심을 털어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사회에 익숙하다. 타인은 적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공동체적인 가치가 끊어졌다. 모든 조직이 그렇다. 결과중심주의로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불신이 많다. 우리가 겪었던 리더십들이 모범이 안됐다. 위로는 모범이 안되고 주변은 모두 경쟁자, 아래로 내 자식은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절대 고독이다.
지금 우리 문화의 문제점은 결과중심주의 때문이다. 국가를 봐도 그렇다. 대한민국 지도자를 투표할 때 GDP성장률을 내세우는 사람에 대해서 낙선운동을 하라고 한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제시하면 이걸 달성할 수단에만 집착하게 된다. 모든 거시정책이나 정부가 해야 하는 모든 대책은 7%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간다. 이건 아니다. 국가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불행한 사람이 줄어들까'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미래를 걱정하는 40, 50대 들이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거둘 수 있을까'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장률은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우리가 너무 느린가? 조금 높여보자'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목표를 수치화하면 힘들어진다. 기업은 무조건 순익을 내야 하고, 개인은 돈 많이 벌어 출세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다. 목표가 최우선이 되면 과정 속에서 서로 경쟁자가 되고 외롭고 고독하고, 결국 집단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정신과 의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 공식 발표되는 것보다 우울증이 훨씬 심각한 상태다. 집단우울증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멀쩡한 것 같지만 다 우울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소연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그런데 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없다.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불가능하다. 얼마나 고독한가."
_ 집단적 우울증을 풀어낼 방법은 있나.
"신뢰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믿어라고 말한다고 그들이 믿지 않는다. 부모가 말로만 믿어라 한다고 되겠나.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본다. '성실히 살아라' '화목해야 한다' '가화만사성이다'라고 해놓고 부모가 서로 싸우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일 먼저 국가가 진심으로 국민을 위로하고 우리사회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고민하면 사회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윗물이 맑아야 한다는 것이 그 말이다. 국가의 가치관이 건강해야 된다. 청년들을 만나 가치관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한다. 충격적이다. 가치관을 물어보면 목표를 얘기한다. 가치관이 서야 목표가 선다. 가치관 없이 목표만 있으면 가치부재 상황이다. 국가가 목표만 얘기하면 안된다. '747'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_ 시장자본주의에 문제는 없나.
"가장 큰 숙제다. 꽤 힘들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제대로 정의를 하고 있지 않다. 마켓캐피탈리즘(시장자본주의)과 캐피탈리즘을 동의어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문제는 마켓캐피탈리즘이다. 오류를 수정하고 가야 하는데 '맥락화의 함정'에 빠져있다. 칼 폴라니가 일찌감치 경고했다. 우리는 공산주의에 대한 강력한 나쁜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나빠'라는 것에서 시작되어 '반시장은 나빠'라는 맥락이 형성된다. 사회주의는 반시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기업에 대한 비판은 나쁘고 반기업도 나쁘다'는 맥락에서 재벌비판은 나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다 보니 '공산주의는 나빠'라는 논리가 '재벌을 비판하면 안된다'는 맥락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에 대한 비판이 좌우파 논쟁으로 변질됐다. 그만큼 마켓캐피탈리즘이 신성불가침으로 존재한다. 이는 무오류성 무비판성 맹목성 광기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것이든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무엇이든 비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켓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 같은 맥락화의 함정에 빠져 그것을 괴물로 자라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모순이 많이 축적되었다. 서서히 교정할 기회를 잃었다. 따라서 다소 과격한 교정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강단 경제학자는 아니다. 나이브하고 감상적이다. 하지만 이상 없는 현실은 없다. 과격한 수준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_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우리만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열풍도 있다. 우리가 무역량이 많다 보니 대외의존성이 너무 강하다. 거부할 수 없는 열풍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쇄국 이후 개국하는 100년 전의 부작용을 지금 그대로 겪고 있다. 두 가지 문제다. 어쩔 수 없는 산업구조에 관한 것으로 세계적인 조류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하나다. 영국이나 미국도 유사한 상황이다. 또 하나, 우리 고유의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압축성장 속에서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다. 국가나 기업도 반성과 고민과 교정이 없었다. 그것을 통해 일부 윷馝?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煥灌?아니라도. 세계적 조류에도 맞춰야 한다. 내부와 외부 등 두 가지 트랙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쉽지는 않은 일이다."
● 박경철은 누구
196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을 개원했다. 하지만 이후 '시골의사'라는 별명의 증권 전문가로 변신했고 칼럼니스트, 방송 진행자,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진료는 하지 않는다. 그가 병원에서 겪은 사연을 담은 에세이집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함께 2년여 동안 '청춘콘서트'를 진행했으며 지난 9일 경북대를 끝으로 일정을 마쳤다. 시골의사의>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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