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중국 쿵푸의 본고장 샤오린쓰(少林寺ㆍ소림사)에 때아닌 소동이 일었다. 소림사 소재지인 허난(河南)성 덩펑(登封)시가 홍콩 기업과 몰래 손잡고 소림사를 홍콩 증시에 상장하려 했던 것. 이 공작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여론의 화살은 소림사 방장 스용신(釋永信ㆍ46)에게 향했다. 그가 20년간 끊임없는 변신으로 소림사를 비즈니스형 사찰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중국 불교의 이단아
소림사가 어떤 절인가. 중국 전통무예 쿵푸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지만 깨달음과 개인의 수행을 미덕으로 삼는 선종(禪宗) 불교의 본향이다. 5세기 창건 이후 탐욕을 멀리하는 구도의 길을 걸어왔기에 중국인들에게는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속세와의 타협을 거부한 탓에 고난도 많았다. 특히 1949년 종교를 인정하지 않은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찰 농경지는 모두 몰수됐고, 문화대혁명(66~76년) 기간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러나 천년 고찰의 도도한 자존심은 87년 젊은 방장의 등장과 함께 여지없이 무너졌다. 1,500년 소림사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22세)에 방장으로 취임한 스용신은 철저히 '비즈니스 마인드'로 사찰을 운영했다. 그는 "바티칸도 자체 은행을 소유한 일종의 다국적 기업"이라며 종교의 영리 추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소림사의 사업 방식은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연상케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쿵푸 세계 순회 공연을 비롯, 북미와 유럽 등에서 40개가 넘는 쿵푸 도장과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제작에 투자하고, 전통의학과 연계한 약국이나 소림사의 이름을 빌린 유통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고기와 술을 금기시하는 선종의 계율에도 불구하고 주류ㆍ육류가공업체에 이름을 빌려줄 정도다. 98년엔 아예 '소림사 사업개발 주식회사'를 만들어 중국에서 첫 번째 종교그룹으로 등록됐다.
자본주의보다 더한 사찰의 상업화는 중국 사회에서 극렬한 반발을 불렀다. 2009년 소림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스용신 이름을 도용한 해커의 가짜 반성문이 올라 화제가 됐다. "사찰의 신성함을 저버리고 젯밥에만 눈이 멀었던 어리석음을 뉘우친다"는 내용이었는데, 종교의 돈벌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거부감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스용신의 경영학석사(MBA) 이력이 더해져 중국 포털사이트에서는 그를 "가사(袈裟ㆍ승려의 법복)를 입은 장사꾼"으로 폄하하는 글이 심심찮게 오르내렸다.
그럼에도 스용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소림사 재정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연간 200만명이 찾는 입장객 수입일 뿐, 영리 활동으로는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각종 사업은 소림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유산을 알리기 위한 홍보일 뿐이라는 얘기다.
권력과의 공생으로 승승장구
스용신은 1억7,000만원짜리 폭스바겐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타고 다닌다. 대중 앞에도 스스럼없이 아이패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나선다. 보통의 승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치로 보일 법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모든 편의 용품들은 지방정부가 제공해 준 것들이다. 중국 당국이 스용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는 간단하다. "관광 수입의 70%는 지방정부의 몫으로 돌아간다. 소림사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라고 정부가 선물로 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공산당 정부와 종교의 미묘한 동거관계는 스용신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중국 정부가 허용하는 5대 종교(불교, 이슬람교, 가톨릭교, 기독교, 도교)는 모두 공산당 연합선전부와 국영 종교사무협회의 관리ㆍ감독을 받아야 한다. 당국은 비인가 종교에도 대체로 관대한 편이지만 이들이 정치적 색채를 띨 경우 가차없이 채찍을 휘두른다. 파룬궁이 대표적이다.
스용신은 이런 역학구도를 적절히 활용했다.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의원인 동시에 2002년부터 중국 불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공산당원이 대부분인 정부기구의 눈밖에 나면 자신의 지위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스용신은 "중국 역사를 통해 종교는 황제와 국가를 존경해 왔다"며 "소림사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진 정부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스용신과 소림사의 변신은 정치와 종교, 상업성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산물이다. 자신을 물질숭배자로 치부하는 외부의 시선과 정부 감시의 틈바구니 속에서 영향력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원칙이 있다고 강조한다. 사업 확장은 어디까지나 불교의 정신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스용신은 "증시 상장 계획에 반대한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일깨우는 홍보 목적과 무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즈니스는 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가 대중의 색안경을 벗길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