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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법관 A에게- 또다른 사법개혁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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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법관 A에게- 또다른 사법개혁의 방법

입력
2011.09.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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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으로서 개개의 사건에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판단을 내리기에 바쁜 줄 알지만, 내가 지난 수년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실에 기초하여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2009년 봄부터 로스쿨이 출발했고, 이에 따라 법대를 나오지 않은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네. 3년 동안 법을 가르쳐 이들을 사회에 내 놓으려니 교육의 중점이 많은 법분야에 관한 지식보다는 사실을 어떻게 분석하고 법을 어떻게 찾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지. 새로운 사안을 만들어 논의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내려진 법원의 법적 판단을 많이 참고해야 한다네. 따라서 대법원의 법률적인 쟁점에 대한 최종 판단보다는 사실심 판결이 더 도움이 된다네. 또 많은 판결처럼 몇 가지 고려요소를 열거하면서 바로 결론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떤 요소가 더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지, 유사한 사실관계에서 다른 법적인 판단이 나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사전적으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계획을 한다면 어떻게 무엇을 고쳐야 할지, 입법론적으로 법문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등을 논하지.

문제는 사실심에 대한 접근이네. 각급 법원이 각자의 홈페이지에서 많은 판결문을 게재하고 있고 법원도서관에서 하급심판결집도 나오고 있으며 대법원의 판결검색, 법원 외 사설서비스의 판결검색, 구글검색도 가능하지.

그러나 이들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관련 판결을 찾기에는 너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특정 논점에 대한 판결을 검색하려면 법원의 내부전산망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네. 이는 법원도서관 3층 3개의 터미널에서만 가능하지. 판사를 제외한 일반인이 법원도서관을 이용하려면 하루 전에 인터넷이나 전화로 시간을 정하여 1시간 동안 예약을 해야 하지. 대법원 3층에 가면 벽면을 향한 3개의 컴퓨터 모니터가 있더군. 메모를 하려고 해도 노트를 올려놓을 만한 공간도 없는 옆으로 긴 좁은 테이블 위에. 그렇지만, 특정 법조문을 입력해 해당 법조문의 적용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니. 특정 변호사 이름을 넣어서 최근에 개업한 변호사가 수임계를 내고 처리한 사건의 수와 종류를 분석할 수도 있다네. 많은 하급심 판결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정형적 문구를 반복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개개의 사안에서 사실관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네.

자네는 대법관으로서 좋은 판결로 우리나라의 법치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위치라네. 그러나 그보다 더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는 길이 있네. 법원의 판결문을 공개해 모든 이들의 비판을 받도록 해 보게나. 그러면 좋은 판결 하나보다 더 많은 좋은 비판들이 나올 걸세. 우리가 7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다수의 의견을 모으면서 나아가는 것이 하나의 의견을 강요당하면서 나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 아니던가.

정영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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