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솟은 빌딩의 옥상. 바닥이 아스라해 보이는 이곳에서 미군 한 명이 훌쩍 몸을 던진다. 어, 웬 미친 짓? 그런데 웬걸, 뒤따라 차례차례 미군들이 뛰어내린다. 혹시 집단자살? 하지만 대형 역설이 숨어 있다. 이들은 날다람쥐처럼 유유히 빌딩 사이를 날더니 낙하산을 풀어 가뿐히 지면에 안착했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트랜스포머3'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미군들이 입고 있는 것은 '윙슈트(wingsuits)'.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이 아니라 실제 빌딩에서 윙슈트를 입고 점핑한 뒤 시속 240㎞로 활강하는 모습을 헬멧에 카메라를 장착해 촬영했다고 한다.
윙슈트는 1980년대 인기 익스트림 스포츠였던 베이스점핑에 사용된 낙하산에서 출발했다. 베이스점핑은 빌딩이나 다리 등 높은 곳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스포츠. 비행기나 헬기, 열기구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사용되는 보통 낙하산과는 달리 활강이 유연한 낙하산을 이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층 나아가 맨몸 낙하를 통해 베이스점핑보다 좀더 극적인 스릴을 만끽하기 위해 1990년대 전문가들이 윙슈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베이스점핑용 낙하산에 날다람쥐에서 힌트를 얻은 날개 구조를 첨가한 것이다.
윙슈트의 초기 개발 과정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실험 도중 희생자가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1998년 안전도가 높은 일반용 제품이 만들어져 시중에도 판매되기 시작했고, 비로소 윙슈트 점핑의 시대도 열렸다. 그리고 2002년에는 현재 사용되는 윙슈트가 2명의 캐나다인의 아이디어로 프랑스인 장 알버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윙슈트는 팔과 몸통 사이, 그리고 두 발 사이에 낙하산 천을 두 겹으로 부착해 만든 '날개 옷'. 팔과 다리를 펴면 천이 펴져 공기를 가르며 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낙하시 천에 양력이 걸리면서 천천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천 아래 공기 밀도가 높아진다는 원리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뛰어내린 후 몸을 틀어 방향 전환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절벽이나 바위, 빌딩 모서리와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날 수 있다. 공중에서 자유낙하하면서 몸을 뒤집기도 하고 공중제비도 돌 수 있다. 지상 30~40m에 도달하면 낙하산을 펴 안전하게 착지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기 스포츠여서 언론의 관심도 높다. 누가 어디서 어떤 기록을 세웠다는 식의 보도가 자주 나온다.
윙슈트 한 벌의 가격은 200만원대. 미국 버드맨사 제품이 가장 잘 팔린다. 키와 몸무게에 따라 규격이 다르게 제작돼 있다.
간단한 옷만 입고 고공 낙하하다 보니 추락에 대한 걱정이 높은 것도 사실. 이에 대해 영국인 윙슈트 점퍼 마크 해리스는 "윙슈트 점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며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스포츠"라고 말한다. 그는 "윙슈트를 입으면 위험은 매우 줄어들게 된다"며 "윙슈트는 점퍼가 하늘을 비행하는 동안 가해지는 외부의 압력들을 최소화해 더욱 자유롭게 낙하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고 부연한다. "윙슈트 점퍼가 하늘을 시속 120km 이상의 속도로 날고 있어도 윙슈트를 입은 사람이 느끼는 속도는 그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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