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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장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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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장수 비결

입력
2011.09.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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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부장이 대세란다. 방송 드라마에서 매력 있는 남성 주인공들의 사회적 지위가 본부장인 사례가 워낙 많다는 얘기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주요 남성 캐릭터가 본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등장한 드라마가 최근에만 무려 5편 이상은 되는 듯했다. MBC '불굴의 며느리'의 문신우(박윤재), '내 마음이 들리니'의 차동주(김재원), '미스 리플리'의 송유현(박유천) 그리고 SBS '보스를 지켜라'의 차지헌(지성)과 차무헌(김재중), '여인의 향기'의 강지욱(이동욱)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엔 실장이라는 직책이 멜로 라인의 단골 직위였고 '실장 전문배우'라는 우스개 별명을 가진 연기자들까지 있었는데, 이젠 그 유효기간이 다 된 모양이다.

실장이든 본부장이든 이 캐릭터들이 대변하는 것은 같다. 재벌 2, 3세에 버금가는 재력, 고학력, 준수한 외모로 대표되는 조건 좋은 남자의 상징이라는 걸 누구나 안다. 단지 어두운 성장 배경이나 마음의 상처가 있다든지 표면적으로는 까칠한데 알고 보면 따뜻한 인간미도 겸비하고 있다든지, 약간의 변주가 있을 뿐, 완벽한 조건에 모성애를 자극할 만한 빈틈까지 갖추고 있으니 아무리 강철심장을 가진 여성이라 해도 안 넘어 갈 재간이 없다.

특히 이 남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스펙을 자랑하는 미모의 여성들을 제쳐두고 하필 연상의 과부, 자랑할 배경이라곤 없는 억척스런 날라리, 여생이 몇 달 남지 않은 고집 센 암 환자 등등 존재감이 미미하기 그지없는 여자들만을 사랑하며 시련을 자초한다. 한마디로 여성 시청자들의 로망을 충족시켜 줄 환상 속의 그대이자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한 방에 해결해줄 왕자님인 것이다. 따라서 주류 대중문화가 왜곡된 현실을 재생산 해 우매한 대중을 홀린다고 비판해 온 특정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내용의 드라마들이야말로 현실도피적인 몽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 이론가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무지몽매하지 않다. 대중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심지어 직장에서 직접 접하는 본부장들의 외모나 패션, 생활상은 전혀 다르다는 유머 섞인 체험기까지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매일 목격하고 있는데 어떻게 속을 수 있겠냐면서 말이다. 재미있는 건, 드라마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현실감 없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캐릭터의 매력과 장점을 찾아내 즐길 줄 아는 시청자들의 태도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화제작의 여주인공들은 트렌드에 민첩하게 적응하면서 스스로를 경신하고 있다. '보스를 지켜라'의 은설(최강희)은 두 본부장이 자신에게 구애하는 복 터진 와중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괜히 신분 차이 심하게 나는 보스들과 엮여 종국에는 어렵사리 얻은 안정된 직장에서조차 쫓겨나게 될 테니 아예 시작도 않는 게 낫다며 그들의 공세를 차단하려 애쓴다. 반면 '여인의 향기'의 연재(김선아)는 암 선고를 받자 그 동안 억눌러왔던 욕망에 솔직해지면서 대담한 행보를 시작한다. 나도 죽기 전에 저런 완벽한 놈이랑 연애나 한번 해 봐야겠다나. 결국 두 여자는 우여곡절 끝에 '본부장님의 여자'로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성차별적 역할모델로 지탄받아온 신데렐라 스토리는 어떻게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용납될 수 있는 걸까. 현실에서는 남성 권력을 통하지 않고서 여성의 능력만으로 그런 '드라마틱한' 변신을 하기는 아직도 너무 힘들기 때문 아닐까.

김선엽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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