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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랑, 그 녀석' 90년대 청춘의 소소하면서 애틋한 사랑의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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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랑, 그 녀석' 90년대 청춘의 소소하면서 애틋한 사랑의 풍속도

입력
2011.09.16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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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녀석/한차연 지음/열림원 발행ㆍ372쪽ㆍ1만2,500원

'90년대 학번 여러분, 당신의 청춘은 어땠나요.'

한창 사회에 적응해 조직의 허리로 진땀 빼고 집에선 애 키우랴 눈코 뜰 새 없을 '90년대인'에게, 잠깐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함께 가보자며 손을 내미는 한 권의 소설이 나왔다.

"무엇을 하건 어정쩡하고 무엇을 꿈꾸건 너절했으니 그것이 90년대"라는 독백으로 머리를 여는 장편소설 <사랑, 그 녀석> 은 90학번 소설가 한차현(41)씨의 자전적 삶이 투영된, 청춘의 사랑 이야기다. 소비에트의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CF 여왕 최진실이 탄생한 1990년은 학생 운동에서 대중 문화 향유로의 청년문화 전환을 예고했던 해. 이 무렵 대학 신입생으로서 작가의 분신이라 할 '차현'이 겪는 90년대 초반 대학가와 풋사과 같은 사랑의 풍경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학과 선배 미림과 어설픈 연애를 하다 차이고, 실연의 고민을 털어놓던 술친구 은원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껴 서로 밀고 당기다 첫 경험을 하게 되고, 군 복무 후 복학한 뒤로는 후배 정민이 끼어들면서 묘한 삼각관계를 맺는다는 이야기의 골격은 그리 남다르거나 특출날 것 없는 경험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살을 이루는 90년대 초반 청춘들의 풍속도가 촘촘하게 복원돼, 한 시대의 청춘을 표상하는 싱싱한 생명력을 얻는다. 90년대식 사랑 경험이 개인마다 다르더라도, 추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되밟는 기분으로 제 각각의 회상에 젖을 수 있다.

예컨대, 차현과 은원이 처음 살을 부대낀 곳은 서울 종로3가 국일관 맞은편 나이트클럽. 보니 엠의 'Happy Song'에 맞춰 몸을 흔들다 'Hotel California'에선 서로 껴안고 블루스를 추는 장면 묘사 등 소설 곳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 영화 제목, 신문기사 헤드라인 등이 언급된다. 미림 선배를 만나러 가는 거리에선 '그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난 포기 하지 않아요'라는 신해철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바람아 멈추어다오'의 이지연이 몰래 사귀던 애인과 함께 돌연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고 수도권에 3일 동안 폭우가 쏟아지며 급기야 65년 만에 한강 둑이 무너"지던 시절. 주인공들은 이상은, 015B, 이문세, 서태지와 아이들, 솔리드의 노래를 듣고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토탈 리콜' 등의 영화를 보며 기쁨과 이별과 권태와 질투가 뒤엉킨 소소한 사랑의 방정식을 풀어간다.

이 소설의 값진 미덕이라면 80년대의 뒤안길 아니면 단절의 시대로 그려지던 90년대를, 90년대인에 의해 그들 방식대로 복원하고 기억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라는 점이다. 90년대를 어떻게 회고할지는 이제 90년대인의 몫으로 넘어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색채의 90년대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이 소설엔 추억 밟기 외에 또 다른 권유도 담긴 것 같다. 90년대인의 주된 문화적 향유 대상은 소설이 아니라 영화와 대중음악으로, 이들은 소설과 본격적으로 결별한 첫 세대일지 모른다. 작품 속에서도 시대적 아이콘으로 문학작품보다 대중가요와 영화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 그러나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복원해 되돌아 보게 하는 것은 소설이 아니겠냐고, 90년대인들이 놓쳤던 소설 세계를 지금이라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모종의 청탁서일지도 모르겠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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