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만 아십니다."
15일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원인 조사결과에 대한 최종 발표를 하던 정형식 조사단장(전 한양대 교수)은 우면산 터널공사와 산사태의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7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의 원인과 책임 소재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서울시가 주관하고 외부 전문가, 군 등이 참가한 우면산 산사태 원인조사단은 이날 산사태 사고의 첫 번째 원인은 시간당 85.5~112.5㎜의 집중호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또 집중호우로 흘러 내린 토사ㆍ나무 등이 배수로를 막은 점, 지하수 위치가 높아 지반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비가 내려 침식이 가속화한 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조사단은 "산사태 흔적의 시작점은 산 정상의 공군부대 인근"이라는 중간발표와 달리, 군 부대 내ㆍ외부 시설이 대체로 정상이어서 이를 전체 산사태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군부대에서 우면산 인근으로 유출된 물의 양이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지역에 몰린 물 양의 3.85%, 형촌마을의 3.41%로 미미하다는 것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군 부대 펜스 밖으로 연결된 10개의 방류구가 민간인 지역의 수로와 연결되지 않고 방치된 것은 문제라고 밝혀 책임 소재 여지를 남겼다.
지역별로는 모두 집중호우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방배동 래미안ㆍ신동아 아파트의 경우 돌과 흙더미, 나무 등이 배수로를 막은데다 산 허리의 잣나무와 토사 등이 뭉쳐 다시 밑으로 쓸려 내려오면서 사태를 키운 것으로 분석했다.
전원마을은 배수 계통의 문제점이 사태를 더 키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해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서초구가 전원마을의 우면산 기슭에 주말농장을 대거 허가했는데 이번 사태 때 이 곳에서 토사가 대량으로 쓸려 내려 왔다"며 "계곡 상류에는 구 공원녹지과가 넓은 수로를 설치하고, 하류에는 구 취수방재과가 좁은 수로를 설치해 구멍이 막힌 게 원인인데도 두 과가 서로 책임전가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촌마을의 경우 생태저수지가 넘치면서 1m 가량 쌓여있던 토사가 밖으로 흘러 넘친 것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조사됐다. 조사단은 생태저수지의 사방댐 및 저수기능을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발표에서 지난해 산책로 및 약수터 조성공사 등 우면산 난개발과 산사태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또 '지난해 산사태가 있었는데도 서초구가 정비를 소홀히 했다'는 주민들의 문제 제기는 조사하지 않았다. 일례로 우면산 덕우암 약수터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피해를 봤는데도 조사 대상에 포함해 원인을 밝히기는커녕 한달 전부터 4억여 원을 들여 복구공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 용역비로 1억3,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수곤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기술위원회 한국대표는 "산사태 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이번 조사결과는 책임자인 시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이라며 "산사태로 서울에서 17명, 전국적으로 58명이 사망했는데도 지자체가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도록 내버려둔 소방방재청 등 중앙부처의 방관이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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