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원인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던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에서 법원이 남편의 살해 혐의를 인정, 중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2부(부장 한병의)는 15일 만삭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의사 백모(31)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9일 백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출산이 한 달 남짓 남은 아내를 살해하고 태아까지 사망에 이르게 했음에도 사건 직후 범행을 뉘우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라며 “이후에도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애도를 엿보기 힘들고 합리성이 결여된 변명을 하는 등 자기 방어에만 몰두했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전문의 자격시험 불합격 가능성 등으로 예민한 상태에서 피해자와 다투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최대 쟁점이었던 아내 박모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의 경우 빈혈, 약물ㆍ알콜 중독 등 선행 요인이 있어야 하는데 박씨의 병력과 산부인과 주치의 진술 등을 고려하면 다른 임산부에 비해 실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사망 당시 박씨 시신의 목 부위 피부 까짐, 몸 곳곳의 멍, 목 부위 출혈을 시반(屍斑)성 출혈로 보기 힘든 점을 감안하면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변호인 측 증인이었던 캐나다 법의학자 폴라넨의 진술에 대해서도 “증거로 제시한 자신의 논문은 사건 현장과 조건이 다르고 법정에서 견해를 일부 바꾸는 등 주장의 신빙성이 낮다”고 배척했다.
쟁점 중 하나였던 사망 시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재판부는 “시각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사건 당일 오전 피고인의 행적 등을 종합하면 백씨가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안서에 기재된 사망 추정 시각과 직장 내 온도 측정을 통한 추정 시각은 피고인이 집을 나간 오전 6시41분 이전과 이후가 모두 포함된다”라며 “사망 추정 시각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은 향후 재판에서도 쟁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아버지 박창옥씨는 “선고 결과(형량)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이제 끝난 것 같다. 딸에게 ‘잘 가라’라고 말하고 싶다”라며 울먹였다. 반면 백씨의 변호인은 재판 직후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백씨는 지난 1월 전문의 자격 1차 시험을 치른 뒤 서울 마포구 도화동 집에서 부인과 다투다가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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