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 삽상해진 가을 공기와 청명한 하늘이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가을은 혼자 떠나면 왠지 쓸쓸해지고 말 것 같은 계절. 그래서 너도나도 연인과 아름다운 '도피'를 꿈꾸는 걸까. 연중 결혼하는 커플은 이때가 가장 많고, 여행도 휴가철에 못지 않다.
달콤한 신혼여행과 행복한 추억 쌓기만 있으면 좋으련만, 여성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아이는 계획해서 원하는 시기에 낳고 싶은데…. 여러 피임 유형을 제대로 알고 선택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성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피임 방법을 알아본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 잡기
#서른넷 김수진씨는 첫째 아이를 낳고도 계속 직장을 다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하랴 살림하랴, 둘째 갖기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 6년간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과는 지금도 애정전선에 문제가 없다. 둘째 아이는 터울을 두고 생각하고 싶지만 남편은 피임에 적극적이지 않아 매번 조심스럽다.
김씨처럼 첫 출산 이후 피임을 원하는 기혼여성에게 효과가 확실한 방법은 피하이식형이다. 성냥개비만한 작고 부드러운 막대를 팔 안쪽에 심는 것이다. 이 막대에는 배란을 억제하고 자궁경부에서 나오는 점액을 끈적끈적하게 만드는 호르몬이 들어 있다. 점액의 점도가 증가하면 정자가 자궁이나 난소로 이동하기 어렵다.
부분마취 후 위팔(상완)에 주사기로 호르몬 막대를 넣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정도. 간단한 시술 한번으로 최대 3년간 피임효과를 볼 수 있다. 시술 후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담배 피는 여성도 시술이 가능하다. 단 간이 안 좋거나 질 출혈이 있는 여성은 이 방법을 피하는 게 좋다.
아이 아닌 날 위한 삶 찾기
#서른여덟 이소라씨는 남매를 키우는 결혼 10년 차 주부다. 더는 아이를 갖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찾고 싶어 얼마 전 남편과 난관이나 정관수술 같은 영구피임을 할까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수술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이 적지 않아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
이씨처럼 이후 임신계획이 없는 여성은 자궁 내 장치형 피임을 고려해볼 수 있다. 질을 통해 자궁 안으로 넣은 플라스틱 장치(T자 모양 루프)가 난자와 정자의 수정을 방해하는 원리다. 한번 시술로 최대 5년 동안 피임 효과를 볼 수 있고, 실패율이 1% 미만으로 매우 낮다.
단 사람에 따라 생리 양이 많아지거나 생리통이 심해져 삽입한 장치를 도중에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또 자궁이나 골반 등에 염증이 있는 여성이라면 이 방법을 피해야 한다.
매일 챙기는 번거로움 피하기
#서른하나 신루아씨는 지금까지 남편이 주로 피임을 챙겨왔다. 그래도 혹시 임신 아닐까 하고 불안해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젠 직접 챙겨야겠다 싶어 매일 피임약을 먹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지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아니라서 잊지 않고 약을 챙겨먹을 자신이 없고 또 번거로울 것 같아 망설여진다.
단기 피임을 원하지만 약 먹기는 번거로워하는 신씨 같은 여성은 질 내 삽입형 피임을 시도해봐도 좋다. 유연하고 부드럽고 투명한 플라스틱 링을 질 안에 넣는 방법이다. 링에서 호르몬이 나와 배란을 억제하는 원리다. 3주간 넣고 있으면 4주 동안 피임이 된다는 점에서 효과는 먹는 약과 비슷하지만 매일 복용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처음으로 피임 시작하기
#스물여덟 진시우씨는 생리주기가 불규칙하다. 게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밖에 나가기가 힘들만큼 통증이 심하다. 하지만 원체 약을 잘 안 먹는 터라 생리기간엔 그저 집에 틀어박혀 끙끙 앓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중요한 여행이나 약속이 생리기간과 겹치기라도 하면 낭패다.
평소 약을 잘 먹지 않거나 첫 피임약 복용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면 저함량의 먹는 피임약이 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먹는 피임약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복용할 경우 피임 성공률이 99.8%에 달한다. 21일 동안 먹으면 28일간 피임 효과가 있다.
피임약을 먹으면 몸무게가 는다거나 오래 먹으면 불임이 된다고 생각해 복용을 피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용 초기에 호르몬 변화의 영향으로 몸 속 수분 함유량이 늘면서 붓는 느낌이 들 수 있으나 일시적인 현상이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장(베일러 이화산부인과 원장)은 "피임약 성분은 몸에 쌓이지 않고 복용하는 동안 배란을 억제하는 데만 쓰이기 때문에 복용을 멈추면 정상 임신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질 銖汰?있거나 유방암, 심장질환 진단을 받은 여성은 복용 전 꼭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며 "특히 35세 이상이면서 담배를 피는 여성은 먹는 피임약으로 심혈관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먹는 약이 성공률 가장 높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피임 방법은 콘돔 이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9년 15~44세 국내 여성 4,8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형별 피임 방법은 콘돔이 24.3%, 불임수술이 22.7%, 자궁 내 장치가 12.8%로 나타났다. 먹는 피임약은 2%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실제 피임 유형별 성공률은 먹는 피임약이 92~99.8%로 가장 높다.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은 피하 이식형과 질 내 삽입형도 각각 99%, 85~95%의 높은 피임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비해 콘돔을 사용했을 때의 피임 성공률은 85% 정도다. 질 안에 넣는 여성용 콘돔의 성공률은 이보다 낮은 약 79%다. 국내 여성들이 잘 쓰지 않는 피임 방법이 효과는 오히려 더 높은 셈이다. 성공률이 가장 낮다고 알려진 피임 유형은 살정제. 정자를 죽이는 성분의 크림이나 좌약 등을 질 안에 넣는 방법으로 실패율이 최고 약 29%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국내 인공유산율이 줄지 않고 있는 이유는 피임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거의 없어 피임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피임 유형마다 효과가 차이가 있고 개인의 건강상태나 생활패턴 등에 따라 적합한 피임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의와 상담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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