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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훈장 주고받기

입력
2011.09.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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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개인에게 훈장을 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국가가 그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은 경우거나 그의 행적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을 경우다. 대한제국 시절 1900년 칙령으로 이 제도가 생긴 이후 국가의 '도움과 필요'는 시대상황과 정권 성격에 따라 수시로 변해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엔 건국공로훈장(1949.4),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무공훈장(1950.10)이 제정됐다. 1960년대에는 산업훈장과 근로공로훈장이 자주 많이 수여됐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새마을훈장과 체육훈장이 신설됐다. 서훈의 과정은 곧 그 시대의 거울과 같다.

■ 우리 사회가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도움과 필요'의 공로가 컸던 사람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 국민훈장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고 문익환 목사가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2007년 윤한봉 전 민족미래연구소장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정도였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렇게 인색했으니 정치적 민감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지난 3일 사망한 이소선(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여사에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서훈을 건의하자 행정안전부가 자체적으로 추천을 않기로 결정했다. 정부 판단을 존중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없지 않다.

■ 행안부가 문제를 쉬쉬하면서 묵살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행안부 산하 공공기관인 기념사업회가 공식 건의한 것이 5일, 행안부가 과(課) 차원에서 기각결정을 한 것이 7일, 언론에 공개한 것이 14일이다. "대상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다른 운동가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는데 기자들이 캐물으니 마지못해 공개한 흔적이 역력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전태일재단 쪽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훈장 받기가 곤란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줘도 받지 않을 줄 알고 애초에 묵살해 버린 것은 아닐 터이다.

■ 한나라당이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거액 기부자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역시 찜찜한 기분이다. 거액 기부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발상도 한심하지만, 그 동안 감동을 주며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킨 사람들 대부분이 훈장 받자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부문화에 '도움과 필요'가 절실한 것은 맞지만 국가의 훈장을 흔들면서 유인할 일은 결코 아니다. 이 여사에 대한 훈장 추서를 거부하려면 그 이유가 떳떳해야 하고, 거액 기부자에게 훈장을 주는 이유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훈장이 어디 감사패나 사은품인가.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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