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런 일이다. 폭발적인 대중적 지지로 닷새 동안 정치권을 휘몰아쳤던 바람을 스스로 잠재운 결정은 우선 안철수 교수 자신을 위해서 현명한 판단이었고, 좀 멀리 보면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다수의 서울시민들은 안 교수의 중도포기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기존 정치권을 한방에 녹다운 시킬 수 있는 호기를 놓친 것을 아쉬워한다. 그대로 밀고 나갔어야했다는 이야기다.
옹달샘 찾는 기분 안겨준 안 교수
안철수 교수는 새롭고 참신한 비전과 이미지로 국민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았다. 정당과 의회, 행정부와 사법부등 기존의 정치질서와 정치과정에 식상해 있던 국민들은 옹달샘을 찾은 기분이었다. 당리당략을 넘어선 공익의 정치, 독선과 독과점을 넘어선 개방과 책임의 정치, 몰상식을 극복한 상식의 정치는 진정 우리들에게 귀한 샘물이다.
닷새 동안의 돌풍이 아니라 우리사회를 지속적으로 순화시키는 시원한 바람, 쏟아 붓는 소나기보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새로운 바람과 샘물을 확보하기 위해선 제도의 틀이 필수적이다. 정치세력화와 정당, 구체적인 정책 대안과 선거전략, 그리고 강한 권력의지와 리더십이 그것이다. 안 교수와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는 짐짓 껄끄러울 수 있다. 기성 정당정치가 싫어서, 과거 선거판에 염증을 느껴서, 독선적 지도자가 보기 싫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데 다시 그 틀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인식이 필요하다. 바람을 일으킨 후 그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선 정당의 문제다. 무소속을 표방한 것이 안철수 돌풍을 일으킨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그 동안 얼마나 국민들이 정당정치를 불신하고 있었는지,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과 정치권을 기피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성 정당정치는 비판과 정풍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당정치 자체를 무시하거나 그 기반이 되는 정치세력화를 소홀히 생각하면 곤란하다. 대의정치의 한계로 협의정치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유입되고 있지만, 국민주권과 다원주의, 그리고 보편적 이데올로기의 선택을 역사적으로 가능케 한 정당정치의 순기능을 결코 폄하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환경변화에 발맞추어 폐쇄적이며 경직된 정당조직과 이념 그리고 운영을 극복하여 개방적이며 유연한 정당정치를 구현하는 것은 기존의 정당과 새로운 정치세력 모두의 과제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의 범주를 설정하는 인식이다. 최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과정에서 나타난 과잉 정치현상과 당리당략으로 인한 시정의 삐걱거림을 문제 삼을 수는 있겠지만, 서울시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치는 배제되고 행정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인식은 구시대적이다. 서울시장이야말로 정치적 역량이 요구되는 자리다. 시의회와 타협하여 뜻을 관철시키고, 복지, 교육, 환경 등 제반 정책의 관련 이해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 시정의 본질이다. 시정은 시의 행정을 아우르는 시의 정치를 의미한다.
새 정치세력 결집 필요성 커져
시정이든 국정의 차원에서든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것이 다수 국민의 뜻임을 확인했다면, 그 뜻을 모아 정치 세력화하려는 강한 의지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곧 권력의지다. 비록 인내와 고난의 길이지만 제2, 제3의 안철수가 어깨동무하며 새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탄탄하고 중심 잡힌 정치세력을 결집하길 기대한다. 안철수 신드롬은 바이러스 백신과 함께 여전히 통용되기 때문이다. 점프로 높게 오를 수 있지만 내려오면 제자리다. 작지만 한걸음 내디디면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있다. 한 박자 쉬어가면서 가다듬어가는 행보가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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