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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정희와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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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정희와 안철수

입력
2011.09.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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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드롬'이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1998년 외환 위기를 맞이했을 즈음이다. 당시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경제 상황이 강력한 지도력과 경제 제일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렀고, 대안과 리더십 부재에서 오는 좌절감은 '박정희 신드롬'을 부추겼다. 추락한 경제 현실에 절망한 국민들의 집단적 좌절은 경제를 일으킨 전직 대통령을 영웅으로 부활시키는 허무주의적, 낭만주의적 경향으로 이어졌다. 그런 박정희 신드롬은 경제 개발 과정에 부의 분배, 정의와 인권 등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들이 질식사했다는 점을 무시하면서 그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등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안철수 신드롬'도 유사한 상황에서 나타났다. 해결 방법이 없는 청년 실업,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경제 상황, 믿을 수 없는 정치 리더십 등이 또 다시 '구원 투수'를 갈구하는 것이다.

이 같은'신드롬'이 잉태되는 토양은 결국 어려운 경제 현실과 어두운 미래다. 이명박 정부도 척박한 토양에서 화려하게 출범했지만 그들에게 표를 던졌던 택시기사, 청년 실업자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외면하면서 점차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 뒤늦게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서민 대책을 꺼내 들었지만 이미 민심은 이반을 한 상황이다.

안철수 신드롬이 박정희 신드롬과 다른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현존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아픈 청춘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던 안 원장이 어느새 우리 시대의 '인물 아이콘'으로 떠올라 박정희 신드롬의 최대 수혜자인 박 전 대표의 입지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흥미롭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분석처럼 권위보다 자유, 일방보다 쌍방 소통, 논리보다 감성을 담은 청춘콘서트가 순식간에 그를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안 원장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신드롬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정당 일각에서 안 원장을 향해 "알고 보니 좌파였다"는 식의 논평을 내는 것은 지극히 치졸한 당파적 사고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당의 득실만을 따지는 수준 낮은 정치 행위는 그 정당의 존재 가치만 훼손할 뿐이다.

안철수 신드롬이 확산된 배경으로 국민들의 의지와 희망을 국회나 권력 소유자 등에게 전달하는 정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C.W.밀즈는 에서 정치 과정의 소통 문제를 지적하면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즉 권력 소유자와 대중 간의 괴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밀즈는"어느 정당도 사람들의 심리에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일이 없고 대중들은 어떤 정치적 귀속감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정당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그는 제도화한 언론에 대해서도"매스 미디어가 다수의 사람들이 단순히 주어진 의견만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 밀즈의 지적을 빌리면, 안철수 신드롬은 국민의 의견, 유권자의 이익, 대중의 의지를 기존 정당이나, 정치권력, 제도 언론 등이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해 국민들이 정치 과정에서 점차 소외되는 상황에서 발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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