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순환출자에서 수직출자로 바뀐다.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996년 이래 굳어진 순환 출자의 고리가 15년 만에 끊어지게 됐다.
이 같은 지배구조개편과 함께 후계구도와 관련된 계열사 정리도 함께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14일 삼성에 따르면 삼성카드는 보유중인 에버랜드 지분 25.6% 가운데 20.64%를 내년 4월까지 매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삼성카드는 최근 외국계 투자은행들에게 입찰제안서를 발송해 주관사 선정절차에 들어갔다. 이번 지분매각은 금융회사(삼성카드)가 비금융회사(에버랜드)의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정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에 따른 조치다. 삼성도 앞서 지난 2008년 "향후 4,5년 안에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배구조 어떻게 바뀌나
현재 삼성은 계열사간 지분관계가 에버랜드에서 시작해 다시 에버랜드로 돌아오는 전형적인 순환형 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즉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3%를 갖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4%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35.3%를 갖고 있으며 ▦다시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순환출자의 출발점이자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72%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25.1%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각 8.37%를 갖고 있다.
이번에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면 이 같은 순환출자의 고리는 끊어진다. 대신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의 일방향 수직출자구조로 바뀌게 돼 지배구조가 한결 '심플'하게 된다.
다만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처분하더라도 이건희 회장 일가는 여전히 에버랜드 지분 45%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에 변화가 오거나, 그룹지배에 위협요소가 생기지는 않는다.
지배구조 개편 그 이후
관심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에버랜드의 지분 20% 가량을 누가 사갈 것이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 삼성측은 매각 일정이나 방법, 대상 등은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에버랜드가 비상장사여서 특정 투자자가 많은 지분을 가져가는 대량 매매(블록세일) 형태로 거래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서는 에버랜드의 거래 가격이 장부가인 주당 213만원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으면 주당 250만원 이상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다른 삼성 계열사나 우호적 투자자에게 파는 방안은 비판적 여론 때문에 힘들 것"이라며 "대체투자 펀드 및 재무적 투자자에 매각하거나,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차제에 지주회사체제로 갈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삼성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지주사를 설립해 삼성전자 등 주력계열사의 주식을 법적 요건인 20%이상 매입하려면 최소 20조원 이상의 돈이 든다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은 일반기업(삼성전자 등)과 금융회사(삼성생명ㆍ화재ㆍ증권ㆍ카드 등)가 섞여 있어 한 지주회사 안에 두기엔 법적 제약도 많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당장은 지주사 전환보다 수직출자 형태를 유지하면서, 경영권 승계작업을 병행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로선 후계구도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금융계열사들은 이재용 사장 ▦삼성물산과 호텔신라는 이부진 사장 ▦제일기획과 제일모직은 이서현 부사장 쪽으로 분할되는 안이 유력한데, 어차피 이런 계열ㆍ지분정리 과정에서 지배구조문제는 다시 손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다만 재계에선 이번 수직출자전환을 계기로 이 계열정리작업이 좀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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