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남긴 발자취는 짧지만 강렬했다.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동원은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전설'의 등장을 알렸다. 1976년 청룡기대회에서는 군산상고를 상대로 1경기 최다인 20개의 탈삼진과 4경기 연속 완투승을 기록했다. 연세대 시절에는 23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1981년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해 최우수선수(MVP)와 다승왕, 신인왕을 싹쓸이한 최동원은 1983년 롯데에 입단해 불 같은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앞세워 거의 홀로 마운드를 이끌다시피 하며'무쇠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입단 2년차인 1984년에는 27승(13패)6세이브에 223탈삼진으로 정규시즌 MVP에 올랐고,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혼자 4승(1패)을 따내며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최동원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에 2점대 평균자책점,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프로야구 마운드를 호령했다.
그러나 1988년 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하다 삼성 김시진과 맞트레이드 됐다. 삼성에서의 2년간은 그 동안의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끝에 1990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 통산 성적은 103승74패26세이브, 평균자책점은 2.46.
은퇴 후 그는 '잠시' 외도를 했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 때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의 텃밭 부산 서구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했지만 정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이후 고인은 방송사 해설위원, 라디오 쇼 진행자, 시트콤 배우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돌아올 곳은 그라운드였다. 최동원은 은퇴 10년 만인 2001년 한화의 부름을 받고 코치로 야구계에 복귀해 2006년부터 3년간 한화 2군 감독을 지냈고, 2009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종석기자 lef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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