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중반의 우리 세대를 '라디오 세대'라 불러도 좋으리. 라디오로 연속극을 청취하고, 라디오로 유행가를 배우고, 라디오로 고교야구 중계를 들었다.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대통령배, 봉황대기 등의 고교야구대회 중계에 귀를 가져다 대며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 우리를 열광케 했던 '안타제조기'란 별명을 가진 대구상고 장효조 선수를 기억한다. 정확한 타법을 자랑하는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자연히 빨라지고 높아졌다. 그 뒤엔 '장효조 선수 안타, 안탑니다!'라는 환호성이 이어지곤 했다. 나는 야구부가 있는 마산상고로 진학하면서 더 깊이 야구에 빠져들었다.
야구부 시합이 있는 날이면 원정 응원을 하러 가거나 전교생이 수업을 중단하고 다 함께 야구중계를 듣기도 했다. 경남고 투수인 최동원 선수는 우리 학교 구장에서 보았다. 그는 소문대로 강속구를 구사하던 최고의 투수였다.
그가 투수를 맡고, 4할4푼8리의 타격왕이었던 우리 학교의 임정면 선수가 4번 타자를 맡아 일본 고시엔 대회 우승팀을 격파하기도 했다. 장효조, 최동원 선수가 55세,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치 친 동기를 잃은 듯 허전하다. 삼가 '우리들의 영웅'이었던 그들의 명복을 빈다. 그 영전에 카펜터스의 노래 'Yesterday Once More'를 바친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어렸을 적에… 라디오를 듣곤 했었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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