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무책임한 행태가 도를 넘었다. 국회는 추석연휴 전날,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여야 충돌로 무산됐다. 조만간 본회의를 다시 소집해 처리키로 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견차가 커 사법부의 수장 공백과 헌재의 운영 차질이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 국회가 성희롱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 제명안 부결에 이어 중요 안건 표결을 무산시킨 것은 당리당략에 얽매여 국회의 권능을 스스로 저버린 중대한 직무유기다.
여야가 두 안건 처리를 무산시킨 것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과 헌재 재판관 선출안의 처리 순서를 둘러싼 대립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은 임명동의안을, 민주당은 선출안을 먼저 처리하자고 맞섰다. 일견 사소해 보이나 당리당략과 상대방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승강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키면 한나라당이 헌재 재판관 선출안을 부결시킬 것을로 의심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조 후보자 선출안이 부결될 경우, 민주당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방해할 것을 지레 우려했다.
두 안건은 인사에 관한 사안인 만큼 국회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자신들이 추천한 조 후보자의 선출을 보장해야 표결에 동의하겠다는 민주당의 요구는 무리다. 하지만 조 후보자의 말꼬리를 잡아 이념 성향을 문제 삼는 한나라당에도 책임이 있다. 국가관을 검증한다며 특정 사안에 대한 확신을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국회는 사법부 수장 공백을 최소화하고 헌재 재판관 결원 사태를 한시바삐 해소,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밖에도 정기국회 회기 안에 처리할 일이 산적해 있다. 시대착오적인 이념 문제를 놓고 당리당략적 계산과 기세 싸움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한 국민의 염증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야는 엄중한 현실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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