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총액 4,470억 달러가 소요될 '일자리 법안'의 재원을 '부자 증세'로 메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잭 류 백악관 대변인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연간 소득 20만 달러 이상의 개인과 25만 달러 이상의 가구를 대상으로 4,000억 달러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계획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자발적 부자 증세' 주장이 세계적 화제가 되었지만 대다수 부자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고, 하원 다수의석을 차지한 공화당의 부자 증세 반대 체질을 감안하면 한바탕 치열한 논쟁이 거듭될 전망이다.
■ 세금은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대단히 어렵다. 누적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인 일본이 현행 5% 소비세를 7%로 올리는 오랜 구상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증세가 정권의 명줄을 끊으리란 우려 때문이다. 이런 격렬한 조세 저항이 부자라고 결코 예외가 아니다. 한동안 사회주의라는 인식의 수정자(尺)가 부유층의 조세 저항을 억누르고,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제약이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감내하던 시절도 있지만, 사회주의 몰락과 세계화로 그런 사회적 압력판이 사라진 지 오래다.
■ 특히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세계는 개인과 법인 소득세를 경쟁적으로 낮추었다. 한때 주요 7개국(G7)의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70%를 넘었으나 2000년대 이후 40%대로 떨어졌다. 부자들을 더 잘 살게 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갈고리 모양의 '래퍼 곡선(Laffer Curve)'이 보여주듯, 세율 인상이 세수 증대를 가져오다가 어느 단계를 지나면 도리어 세수가 준다는 점에서 감세가 오히려 세수 확대 방안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경제가 실제로 '래퍼 곡선'의 변곡점을 지났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 반면 누진 조세가 자본주의 지속에 불가결한 소득재분배 정책의 핵심이란 점에서 양극화의 심화는 결국 '부자 감세'정책의 파탄에 다름 아니다. 미국이 검토에 들어간 감가상각 기간 연장 등 '세(稅) 테크'를 깨뜨리기 위한 기술적 장치도 필요하고, 세출 삭감 노력도 절실하다. 그러나 늘어나는 복지 수요와 경기대책 수요로 총세출 증대는 피할 수 없어, 총세수 증대는 이미 상수(常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누든, 부자들이 더 많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압력보다 부유층의 자발적 인식 변화가 선행하면 보기 좋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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