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은퇴를 선언했다."세금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문제로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익숙한 풍경이다.'국민''불미스러운''심려''사죄'란 단어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눈물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퇴장하는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덧붙이는"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한다"도 이제는 '의례'로만 들린다.
강호동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착오든 고의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국세청이 추징한 세금만 내면 된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감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준 '인기'를 함부로 떼먹은 듯한 불쾌함과 배신감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이런 시청자 앞에서 어떻게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 수가 있겠는가.
강호동의 계산된 '잠시' 휴식
어느 때보다 고소득자의 세금 문제에 민감한 최근 사회 분위기의 '희생양'이란 옹호와 동정도 있다. 그러나 시청자의 박수가 하루 아침에 싸늘한 냉소로 바뀐 현실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사실 은퇴선언 이전에 방송사가 먼저 강호동의 출연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방송사 내규는 위법 또는 비도덕적 행위를 하였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의 출연을 제한하고 있다. 이 규정을 가지고 폭행 도박 음주운전사고를 일으킨 많은 연예인을 중도 하차시켰다.
그러나 강호동만큼은 달랐다. 오히려 그가 방송을 그만둘까 방송사들은 전전긍긍했다. 그가 발 빠르게 먼저 은퇴를 선언하자 망하기라도 한 듯 울상이다. 이해는 된다. 당장 대체할 인물이 마땅찮고, 지난달 불거진 하차 파문으로 존폐까지 거론되며 시청률이 곤두박질한 '1박2일'에서 보듯 오락프로에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나 공영방송까지 목을 매고 있다. 여기에 초반 인기몰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종편이 곧 출범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호동이 비장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누가 봐도 그게 아니다. 그는 은퇴 앞에'잠정'이란 전제를 붙였다. 잠시 TV에서 모습을 감춘 채 쉬겠다는 얘기일 뿐이다. 당장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하는 충격요법으로 시청자들의 격한 감정을 달래고, 모질게 말하면 방송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은퇴란 단어를 '면죄부'로 삼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이 또 다른 기회라는 계산이 깔려있을지 모른다. 거추장스런 방송사에 대한 의리나 시청자와의 약속에 대한 부담을 한꺼번에 털어버리고 자연스럽게 더 좋은 조건으로 새 방송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시청자들은 곧 과거를 망각하고 그를 반갑게 맞을 것이고,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그만하면 충분히 반성했으니'잠정 은퇴'를 하루라도 일찍 접고 우리 프로그램을 맡아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그렇게 여느 연예인들처럼 몇 달 뒤 다시 요란하게 방송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다른 연예인들처럼 지난날 자신의 잘못까지도 기꺼이 오락거리 삼으며 웃을지 모른다.
은퇴 번복 일삼는 公人들
연예인들뿐이랴. 정치인들은 어떤가. 눈물과 비장한 결심으로, 아니면 여론에 밀려 마지 못해 은퇴를 선언해놓고는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등장해서는 대통령도 하고, 야당 대표도 하고, 도지사도 하고, 국회의원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랬고,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그랬으며,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그랬다.
혼란스러운 것은 그들이 은퇴를 번복하면서 내세우는 단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하나같이'국민'이다. 국민(시청자, 지역주민)이 원하고, 국가가 원하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욕심이나 의지, 미련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누구도 그들의 은퇴를 강제할 수는 없다. 정년도 없는 직업이니 연예인과 정치인에게 은퇴와 복귀는 그들 마음이다. 다만 함부로 국민을 팔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국민의 다수는 처음부터 '눈물의 은퇴 쇼'를 믿지 않으니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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