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이루고 싶던 꿈이었는데 막상 장르를 규정하지 않고 기획하다 보니 공연을 앞두고 어떻게 알려야 좋을지 모르겠더군요. 연극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니고, 어떤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은 걱정스럽다지만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하다. 연극 '칠수와 만수' '한씨 연대기'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 받아 영화와 TV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혀 온 중견배우 강신일(51)이 1년 6개월여 만에 무대에 다시 섰다. 시와 소설, 공연의 한 대목을 라이브 음악에 곁들여 낭독하는 연극 콘서트 '강신일과 여우'를 통해서다. 5일 첫 공연을 마쳤고, 19, 26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차이무극장에서 두 차례 더 선보인다. 영화음악을 주로 작곡해 온 음악감독 한재권씨와 국악밴드 아이에스(IS) 등이 함께 참여한 이 공연의 수익금은 사회복지법인 생명의 전화에 기부할 계획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로서가 아닌 배우로서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해 왔죠. 또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연기로 대중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 이상의 사회 기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뜻 깊은 무대지만 일단 3회만 준비한 이유는 빡빡한 일정 탓이다. 그는 10월 14일부터 3주간 러시아 출신 미국 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삶을 그린 2인극 '레드'에 출연하며, 연극이 끝날 때쯤엔 새로운 TV드라마 스케줄도 잡혀 있다.
강신일은 2007년 간암 초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무리한 일정"이라는 주변의 성화가 당연해 보이지만 그는 "나는 아직 젊다"고 잘라 말한다.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죽음의 공포보다 더 먼저 찾아온 생각이 연기를 못하게 된다는 서운함이었어요. 후배들과 비교하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아직 힘이 있을 때 더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는 믿음도 있죠."
그는 연극을 하면서,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지 못한 수줍음 많던 소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면의 새로운 욕망을 놓치지 않고 발견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한 게 기쁘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교회 연극반에서 처음 도전한 연기는 낯선 사람 앞에서 나를 고스란히 껍질 벗기는 과정 같아 고통스러웠다"는 그는 "그 고통 때문에 첫 공연 이후 연극반 선생님을 피해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극이지만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4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는 어느새 정확한 발성과 발음이 돋보이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글쎄, 배우는 다양한 인물을 표현해야 하니까 '딕션(발음)이 좋다'는 고정화된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해요. 나는 항상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싶거든요. '강신일과 여우'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 내년엔 제대로 형식을 갖춘 연극 콘서트도 열 생각입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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