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책도 영화 예고편 같은 영상물로 홍보하는 시대다. 뮤직비디오 같은 짧은 동영상으로 책 내용을 맛보기식으로 홍보하는 '북 트레일러'가 문학 출판 시장에서 자리잡고 있다. 문자보다 동영상을 먼저 보고 자란 영상 세대를 출판 시장으로 끌어오기 위한 출판계의 자구책이다.
상반기 최고 화제작인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은행나무 발행)이 스릴러 영화 예고편을 방불케 하는 북 트레일러로 또다른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최근에는 황석영의 장편 <낯익은 세상> (문학동네 발행), 최인석의 장편 <연애, 하는 날> (문예중앙 발행)의 북 트레일러도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연애,> 낯익은>
지난달 말에 나온 <낯익은 세상> 의 북 트레일러는 45초 분량으로 CF 전문 제작사가 만든 영상물. 배우들을 기용해 난지도 소년의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 내용을 뮤직비디오처럼 이미지화했다. 불륜을 통해 우리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드러내는 <연애, 하는 날> 도 남녀 주인공을 기용해 극영화의 한 장면 같은 유혹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인다. 1분27초 분량의 이 영상물은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받은 선지연 감독이 제작했다. 연애,> 낯익은>
앞서 CF 전문업체가 만든 <7년의 밤> 북 트레일러는 으스스한 숲과 우물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의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해 화제를 모았고, 7월에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유령> (은행나무 발행)이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영화 전공자가 제작한 색다른 느낌의 북 트레일러를 내놓았다. 유령>
서구에서 북 트레일러는 보편화된 현상이지만, 국내에서는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단계다. 지난해 7월 김영하의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가 나왔을 때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언씨가 김씨의 팬으로서 자발적으로 북 트레일러를 제작했는데, 비디오 예술의 실험성이 강한 영상물이었다. 이후 출판사들이 북 트레일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초보적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이나 사진 자료, 저자 인터뷰 등을 활용하던 단계에서 실사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무슨>
출판사가 무료로 배포하는 북 트레일러는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나 인터넷 서점, 각종 블로그 등 온라인 공간 뿐만 아니라 책이나 신문 광고, 판촉물에 찍힌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는 영상세대에게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다"며 "앞으로는 극장에서 북 트레일러가 상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북 트레일러 확산에 걸림돌이라면 제작비용 문제. 1~2분 안팎의 짧은 분량의 영상물이지만, 전문 업체에 의뢰해 실사 영화처럼 만들 경우 제작비가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을 넘어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금은 책 저자와 감독간 개인적 인연 등으로 저렴하게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격적인 북 트레일러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영화감독 입봉 전의 지망생들과 학생들이 실험적인 영상물을 만드는 통로로 활용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염 국장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끌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양적 규모보다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 같다"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의 경우 일반인을 대상으로 북 트레일러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적은 제작비로도 효과적인 영상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십자군>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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