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시세는 1억5,000만원인데 한 달 넘도록 나온 물건이 없어요. 2,000만원만 더 얹으면 매매도 가능한데 집주인하고 한번 얘기해 볼까요?"
추석 연휴 시작 전날인 9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C중개업소. 인근 H아파트 전세를 찾는 고객에게 중개업자는 "소형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와 비슷해졌다"며 물량이 부족한 전세 대신 매매를 권했다. 값 차이가 거의 없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는지, 이 고객은 중개업자와 함께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나섰다. *관련기사 5면
같은 날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S중개업소도 소형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30대 후반 고객에게 "3,000만원만 더 마련하면 해당 아파트를 아예 살 수 있다"며 매매 물건을 추천했다. 중개업자는 "전셋값이 매매가의 80~90%정도로 높은 단지라면 전셋값이 집값을 떠받쳐주기 때문에 요즘 같은 침체기에는 오히려 리스크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고공행진을 이어 온 전셋값이 매매가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일대 소형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90%대에 육박할 정도로 매매가와 전셋값이 별 차이가 없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 산본신도시 J아파트 전용 56㎡ 전셋값은 1억2,000만∼1억3,000만원으로, 1,000만~2,000만원만 더 내면 같은 크기의 1억4,000만원대 급매물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C아파트 95㎡는 최근 전셋값이 매매가(2억5,000만원)의 88%선인 2억2,000만원까지 올랐다. 같은 단지 82㎡도 전셋값(1억9,500만원)과 매매가(2억3,000만원) 차이가 15%에 불과하다.
경기 평촌신도시에서 전세 아파트를 구하러 발품을 팔던 이영희(43ㆍ여)씨는 최근 전셋값에 3,000만원만 더하면 매입이 가능하다는 중개업소의 제안을 받고는 고민 중이다. 이씨는 "대출 금리가 오르고 있어 부담스럽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는 전세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아예 대출을 더 받아 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은행이 조사한 8월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59.1%로 2004년 11월(59.5%) 이후 6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 양지영 팀장은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소형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에 육박할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하반기 입주물량 감소와 재건축에 따른 멸실 증가 등 전세불안 요인이 산적해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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