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각종 편법을 동원해 가계대출을 옥죄고 있다.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에 따라 자금 실수요자에게 대출할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중소기업 대출이나 아파트 집단대출 같은 실수요 대출은 오히려 더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은행들은 대신 가계대출 못지않게 안정적인 개인사업자(SOHOㆍ소호) 대출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특별 예대 상계를 통한 기존대출 상환을 유도하고 있다. 고객들이 예ㆍ적금을 중도 해지해 대출금부터 갚도록 하고, 대신 당초 약정한 만기 이자를 모두 지급하는 방식이다. 신한은행은 "예금 만기가 3개월 안에 돌아오는 고객이 권유 대상이지만 희망자에 한해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은 만기를 연장할 때 원금 일부를 갚도록 독려하는 방법도 쓰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가운데 상환 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되는 경우 원금 일부 상환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가계대출 상환 유도는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여신 담당 실무자들을 불러 가계대출 회수를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실수요 대출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대출 옥죄기의 직격탄을 맞는 것은 바로 실수요 대출이다. 지난달 말 현재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기업 등 5개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 잔액은 302조280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1,452억원 줄었는데, 이는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08년 말 이후 최대폭이다.
또 다른 실수요 대출인 주택구입용 대출 증가세도 크게 둔화했다. 특히 지난달 아파트 집단대출 증가액은 7월 증가분(2,808억원)의 6분의 1 수준인 556억원에 그쳤다. 은행권 관계자는 "중기 대출은 연체율이 높아 위험하고 아파트 집단대출은 금리가 낮아 남는 게 적기 때문에 은행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 가계대출 억제는 고육책이다. 경기 둔화와 증시 불안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업ㆍ개인 자금이 은행으로 몰리고 있는데도 가장 안정적인 자금 운용 통로를 스스로 막는 꼴이기 때문이다. 한 은행 임원은 "조달된 자금을 마냥 놀릴 순 없고 운용하긴 해야 하는데 가계대출이 사실상 막혀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부실 위험이 큰 중기 대출을 크게 늘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짜낸 대안이 소호 대출 강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호 대출은 무엇보다 연체율이 중기의 절반 수준이어서 안정적 운용이 가능한 데다, 가계대출로 사업자금을 융통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를 기업대출로 갈아타도록 유도하면 그만큼 은행이 가계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작년 하반기부터 소호 대출에 적극적이었던 국민ㆍ신한은행을 중심으로 은행권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국제ㆍ거시금융연구실장은 "가계대출이 9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줄이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힘들다"면서도 "지나치게 인위적이거나 규제 회피를 위한 편법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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