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 들어 세 차례나 전ㆍ월세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전세시장의 불안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을철 이사 수요와 작년보다 줄어든 입주물량, 서울 강남권 재건축 본격화 등의 영향으로 올 가을 사상 최악의 전세대란마저 예고된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추석대담에서 "전세난은 올해가 고비"라고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다.
정부의 잇단 전ㆍ월세 대책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전세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중소형 아파트 공급 부족이 전세난의 근본원인인데도, 정부가 다세대주택 공급에 치중하는 등 전세입자를 위한 맞춤형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거래 활성화라는 주택경기 부양책과 가계 빚을 줄이기 위한 대출 억제책을 동시에 처방하는 등 '정책 엇박자'가 거듭돼 주택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 것도 전세난 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엇박자 정책에 시장은 냉담
정부가 올해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모두 6건. 4월과 7월만 빼고 매달 부동산 안정대책을 쏟아냈고, 이 중 전ㆍ월세 대책만 세 차례였다. 핵심은 대출 규제를 풀어줄 테니 '빚 내서 집을 사라'는 것이었다. 전세자금 대출규모 확대(1ㆍ13 대책)를 필두로 ▦민간임대 세제지원 ▦취득세 인하 ▦건설사 프로젝트 파이낸생(PF)지원 등 거래 활성화 대책이 줄을 이었다. 매매가 활발해지면 자연스레 전ㆍ월셋값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1ㆍ13 대책을 발표하며 "내 책상서랍에는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고 강조할 정도로 자신만만했으나 시장에선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은 전셋값 상승세에 불을 질렀다. 정부는 양도세 비과세 요건을 완화해 매매를 유도하는 5ㆍ1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기준금리를 올려 주택구매 심리를 위축시켰다. 최근에도 임대주택사업자에 세제 혜택을 주는 8ㆍ18 대책을 내놓은 직후 가계대출 억제대책을 시행해 부동산 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이사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와 물가안정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정부 대책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전세난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주택정책인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전세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변 시세보다 싼 보금자리주택 분양가가 민간 아파트 가격의 바로미터가 되면서 "손해보고 팔 수 없다"는 집주인과 "보금자리주택 가격 정도로 떨어질 때까지 전세로 살며 기다리겠다"는 실수요자가 대치해 전세 수요를 더욱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도권의 경우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보다는 임대 위주로 공급하는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세심한 배려가 부족해 실패한 정책이 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소형 아파트 공급 확대가 관건
전세난을 잡으려면 원인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최근 전세물량 부족 현상은 1~2인 가구가 선호하는 소형 주택에서 두드러진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셋값은 평균 0.52% 오른 반면, 전용면적 66㎡(20평형) 이하 소형은 0.73%나 올랐다. 따라서 소형 아파트의 공급을 늘리고, 보금자리주택을 임대로 전환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문이다.
임채우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3년간 중대형 아파트 미분양이 쏟아지고 있다"며 "단순히 주택이 모자라서 전세난이 생긴 게 아니라 전세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소형 아파트가 모자란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주택 구매력이 있는 자발적 세입자와 그렇지 못한 세입자를 구분한 맞춤형 전세대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도 "중산층 전세난에 초점을 맞춘 기존 대책을 소외계층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가와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진 상태여서 단기간에 전세난을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 당장 투자 수요를 늘리기는 어려운 만큼, 전세사업자를 늘리는 대책을 생각해볼 때"라고 조언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와 가계부채 불안 탓에 정부가 쓸 카드가 마땅치 않다"면서 "집값 하락을 우려한 실수요자들이 전세를 선호하고 있어 전세난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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