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간과 공간,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고 있어요. 한편으론 각 시대의 삶의 조건이나 지배 이념,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 역사적인 것이기도 하죠. 그런 측면에서 사랑의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속성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사랑의 계보'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책 를 출간한 서지영 전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에게 '사랑'이라는 화두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그는 13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책 제목처럼 당대의 문학 작품을 주된 텍스트로 역사 속 한국인의 사랑을 복원해 가는 내용"이라고 운을 뗐다. 책의 전반부엔 중국의 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 소설, 풍속화, 의궤 등에 드러난 전근대 사랑의 서사가 녹아 있다. 김시습의 나 , 에선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의 판타지를 엿볼 수 있고, 조선시대 판 '커피 프린스'라고 할만한 과 에선 남장 여인과 동성애 모티브를 읽을 수 있다.
그는 특히 조선 전기엔 '양반과 원귀 사이의 사랑'이라는 모티브가 '영원한 사랑의 신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차용됐다면 조선 후기엔 등에서 나타나듯이 '양반과 기녀 사이의 사랑을 탈낭만화'하는 도구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했다."(조선 후기)양반 남성들과 달리 사랑을 잉여적 쾌락이 아닌 노동의 일부 또는 생존의 자산으로 삼아야 했던 기녀들의 관점에서 사랑의 본질을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 후반부 '근대, 구성되는 사랑의 역사'에선 20세기 초 조선에 서구 문화가 흘러 들어오면서 근대적 사랑이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생생히 적었다. 서 교수는 "혼인의 틀을 벗어난 사랑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근대와 달리, 근대 이후 '연애'라는 용어의 등장은 성, 사랑, 결혼을 구성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유입됐음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염상섭의 등 근대 초기 소설들은 이미 자본주의 원리가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당시의 욕망과 시대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서 교수는 전근대와 근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윤리적ㆍ이성적 사유의 틀 속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사소한 영역으로 주목 받지 못했다고 파악했다. "연애의 판타지를 순수하게 향유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황폐한 현실 속에서 인간 열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성찰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9월부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전근대와 근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민족 내부의 관점이 아닌 '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틀에서 탐색하겠다"고 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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