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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의궤 속 조선왕실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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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의궤 속 조선왕실의 드라마

입력
2011.09.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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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의궤가 145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가 우여곡절 끝에 귀환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특별전은 조선시대 왕궁문화의 속살을 살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의식과 왕실행사를 기록한 책으로 왕궁문화의 품격을 대변한다. 예악을 숭상한 조선의 통치이념을 담고 있을뿐만 아니라 왕실 구성원의 삶과 일상, 파란만장한 비극적 서사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있어 관심을 모은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오지만 끝내 요절한 소현세자의 장례를 기록한 소현세자예장도감의궤(1645년), 66세의 영조가 15세 소녀(정순왕후)와 치른 혼례를 담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1759년) 등이 눈길을 끈다.

순조와 그의 아들 효명세자의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순조순원왕후가례도감의궤(1802년),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1819년)는 당대 정치지형과 맞물려 특별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나이 왕위에 오른 순조는 즉위 2년 뒤 당시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던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과 가례를 치른다.

반면, 효명세자는 11세 때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과 혼인한다. 풍양조씨는 안동김씨와 함께 당대 최고의 세도가로 자웅을 겨루던 집안이었다. 신부는 훗날 조대비라고도 불린 신정왕후다. 조대비는 82세까지 장수하면서 약 60여 년간 수렴청정하며 권세를 누린다. 더구나 흥선대원군과 결탁해 서열상 자격미달인 고종을 왕위에 올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부왕 순조를 도와 안동김씨를 견제하며 왕권강화를 시도하다 젊은 나이에 급서한 효명세자와 달리 조대비는 긴 세월 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조대비의 팔순잔치를 기록한 신정왕후가상존호도감의궤(1888년)가 이를 반증한다.

정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순조는 외척 김조순의 세도정치에 짓눌려 군주로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상실한다. 현실정치에 한계를 느낀 순조는 아들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다.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효명세자는 외척 중심의 세도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개혁적 성향의 인재를 등용하고, 권력의 핵심인 비변사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대리청정 3년 동안 매년 무악(舞樂)으로 꾸며진 대규모의 궁중연향을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왕권강화를 위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세도정치를 타계하고 왕권을 회복해 가던 효명세자는 22세 때 급서하고 만다. 효명세자는 왜 그리 단명했을까. 효명세자의 죽음을 자연사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조선왕조사를 독살사건이라는 프리즘으로 통찰한 이덕일 또한 효명세자가 독살되었을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효명세자는 누구에 의해 독살되었을까. 각각의 의궤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보면 답이 나올 듯도 하다. 이렇듯 의궤는 조선시대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 갈등, 권력투쟁의 이면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조망케 하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왕조는 사라졌다. 조선왕조라는 선엄적 전제가 소멸된 '지금, 여기'의 의궤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의궤는 조선시대 왕궁문화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예술의 원형을 내장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의궤에 담긴 문화유산적 가치를 오늘에 되살려 새로운 생명력으로 발현시키는 것, 당연히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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