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의회 합동연설에서 4,470억달러(482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세금감면과 사회기간시설(인프라) 투자를 골자로 하는 경기부양책은 당초 예상했던 3,000억달러보다 1,500억달러 가량이 늘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대선이 14개월 남아 있지만, 기다림의 사치를 누릴 수 없는 미국인이 너무 많다"며 "미국인 상당수가 심지어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위기 앞에서 정치 서커스를 중단하고 경제를 살릴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부양책이 담긴 미국일자리법안(American Jobs Act)을 의회에 제출했다. 오바마는 33분 동안 진행된 연설에서 패스(Passㆍ통과)라는 단어를 열네번이나 사용하며 야당인 공화당을 압박했다.
이번 경기부양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근로자 급여세의 추가 감면이다. 지난해 예산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당시 6.2%였던 급여세를 1년 시한을 달아 4.2%로 낮춘 데 이어 다시 3.1%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의회 승인이 없으면 급여세는 연말에 6.2%로 환원된다. 중소기업에는 급여세 부담률(6.2%)을 역시 절반으로 줄여주고 신규투자를 하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금감면은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그들의 지갑을 채우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금감면에는 2,450억달러가 소요돼 전체 경기부양 규모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인프라 투자의 경우 3만5,000여 학교시설 현대화(300억달러), 교통시설 확충(500억달러), 인프라은행 설립(100억달러) 등에 모두 1,000억달러가 소요된다. 실업수당 연장지급 등 고용촉진에 600억달러, 28만명에 달하는 교사와 소방관 해고방지 지원에 350억달러 가량이 투입된다.
하지만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일자리 법안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 뒤의 연단에 앉아 있던 조 바이든 부통령(상원의장 자격)은 수시로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공화당은 그러나 공식 입장 발표를 미루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이너 의장은 "대통령의 연설은 고려할 가치가 있고 대통령도 공화당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희망한다"며 "합의를 위한 문은 계속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의회 승인 여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내주 초 경기부양책 재원조달 방안을 의회에 제출하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은 의회 통과 가능성을 10%로 점치며 "오바마 대통령이 도박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모두 네 차례 의회 연설을 했는데 결과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공화당이 경기부양 방안을 부결해도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잃을 게 없다는 분석이다. 취임 이래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번 연설은 여론을 환기시키는 정치적 행위의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회가 일자리 법안을 승인해도,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경기부양책 규모 4,470억달러 가운데 실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1,300억달러에 불과해 이번 대책은 상황 악화를 막는 현상유지 효과를 내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20,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도 "경제성장과 고용 회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겠다"며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뜻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연준은 추가 부양을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도 한국을 세차례나 언급하며 긍정 평가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다시 보여주었다. 그는 의회가 신속하게 일자리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과의 경쟁을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선 증원하는 교사를 우리는 해고하고 있는데 이는 학생과 미국의 미래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전역에 방송된 의회연설에서 이처럼 한국을 언급한 것은 수억 달러의 광고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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