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정치/제프리 골드파브 지음·이충훈 옮김/후마니타스 발행·288쪽·1만5,000원
역사를 바꾼 거대한 전환은 때로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헛소리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출발한 것처럼. 빵과 과자를 먹고 싶은 사람들은 비장한 각오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지만, 그 커다란 감옥에 죄수가 몇 안 된다는 사실에 또 한번 불끈한다. 저 허울 때문에 숨죽이고 살아온 세월이 억울해서. 그렇게 억울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가 뒤집힌다.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명사는 역사적 구체성 앞에 실재(實在)가 된다.
자유, 평등 같은 말로 '정치는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영화 속 명대사처럼 "뭘 마이 믹이야(먹여야)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학자도 있다. <작은 것들의 정치> 의 저자 제프리 골드파브는 후자의 인물로 동유럽과 미국의 정치문화, 비교 역사 연구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세부적인 사항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정치권력을 만든 작은 공간들 속에 변화의 기원이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나아가 이런 작은 것들의 정치가 테러와 반테러, 지구화라는 지배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자율성을 확보하고, 거대담론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데 핵심 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작은>
예컨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딘의 신속대응네트워크'를 통한 하워드 딘의 선거운동은 선거에서 패함으로써 '인터넷 버블'이라 일축됐다. 그러나 저자는 '가상 공간에서 새로운 민주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으며 더 진지한 대화가 주류 정치, 양당 체계 정치의 일부가 되었다'며 중요한 정치 발전 계기로 분석한다.
이 책은 이런 방식을 통해 1989년 동유럽의 사회주의 붕괴, 2001년 9ㆍ11 테러, 2004년 미국 대선 등에서 '작은 것들의 정치'가 중앙 정치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후기에 한국 정치현상을 분석한 글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작은 것들의 정치는 촛불 시위와 같은 정치적 투쟁을 형성해 냄으로써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들의 역량이 중앙 정치 무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는 것이 요지다.
작은 것들을 말한다고 해서, 하는 말도 쉬울 거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복잡다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최근 학자들의 트렌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 어빙 고프먼의 저작을 토대로 이 변화들을 설명한다. 현재 뉴욕 신사회과학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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