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이 지고 가을 꽃이 피기 시작하는 사이, 은현리에는 기름나물 꽃이 가장 화사하게 꽃의 위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기름을 '지름'이라 말합니다. 잎이 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해서 붙은 기물나물의 이름은, 기름이란 표준어보다 지름이란 경상도 방언이 더 만납니다.
지름, 지름 중얼거려 보면 입 안에서 고소한 '참지름' 내음이 나는 것 같습니다. 기름나무 나물은 봄에 새순으로 즐기지만 꽃은 요즘이 제 철입니다. 기름나물 꽃은 작은 가지 하나에 10여개의 꽃가지를 달고 그 꽃가지마다 30여개의 하얀 꽃이 핍니다. 또 꽃마다 5장의 꽃잎이 달려 있으니 작은 가지 하나에 무려 1,500여 장의 하얀 꽃잎이 달려 있습니다.
꽃을 셈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하나, 둘 헤아려 나가다 보면 따가운 가을볕에 나도 얼굴이 발갛게 익는 꽃이 됩니다. 기름나물은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다 내놓고 양지바른 곳에서 잊힌 듯 여름을 지내다가 구월이 되면 꽃이 절정으로 달려갑니다. 나는 그 꽃을 보는 것이 하얀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꽃들이 펑펑 쏘아대는 하얀 불꽃을 보며 나는 축제라는 말도 떠올려봅니다. 풀과 나무가 꽃을 피워 올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축제의 날일 것입니다. 가을은 9월에서 10월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꽃들이 불꽃을 쏘아 올리며 축제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은현리는 축제 중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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