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가 무너지면 유럽이 무너진다."
'유로존(유로 사용 17개국)의 대들보' 역할을 떠맡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7일 의회 연설에서 유로존 구제금융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메르켈 총리가 인과관계를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일통화의 쇠사슬에 묶인 몇몇 나라의 재정위기가 번번이 유로존 전체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유로 때문에 유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번영의 상징이었다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유로. 과연 유로존의 위기는 단일통화를 쓰는 대가로 치러야 하는 필연적 결과일까.
단일통화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명 장점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은 소비나 투자에서 환전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가격체계 단순화로 비교적 안정된 물가수준을 누릴 수 있다. 금리가 대체로 낮은 쪽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저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당연히 투자와 소비 활성화로 이어져 거시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스 위기 전까지는 이 논리가 진리였다.
그러나 단일통화는 역내국가 간 불균형 심화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무역수지.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무역으로 흑자를 거두면 그 나라 통화가치가 상승하며 수출경쟁력이 낮아지고, 다시 무역수지가 감소하는 균형효과를 거둘 수 있다. 환율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로존이 단일통화로 묶여 있는 바람에 무역흑자국은 환율변동에 따른 흑자감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장 기술력이 우월한 독일이 수출을 늘리며 영원한 흑자국으로 남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유럽의 씽크탱크인 오픈유럽의 라울 루파렐 연구원은 "유로존 주변부 국가(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이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대폭적인 통화 평가절하가 필수적인데 현재로선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화정책이 유럽중앙은행(ECB)으로 넘어가면서 국가별 특수성에 맞춰 미세한 통화정책을 실시할 수 없는 점도 한계다. 예컨대 ECB가 유로존 전체의 투자활성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경우, 인플레이션이 심한 국가는 더 큰 물가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정책만 동일하고 재정과 은행시스템이 따로 노는 건 경제학적으로 완전한 난센스"라고 평가했다.
금리라는 무기를 ECB에 양도한 상태에서, 각국 정부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쓸 유일한 카드는 재정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재정적자가 유럽연합(EU)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SGP)이 규정하는 국내총생산(GDP) 3%를 초과하는 경우가 남유럽에서 빈번한데, 이런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낮은 남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심각한 쌍둥이적자(무역수지적자ㆍ재정적자)를 겪고 있다.
남ㆍ북유럽 간 산업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유로존 역내 교역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이런 불균형은 재정정책이나 산업정책이 통합되지 않는 한 점점 심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그리스의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는 모두 GDP의 10%를 넘어섰으며, 위기설이 돌고 있는 스페인은 적자 비율이 각각 5.5%(경상), 9.2%(재정)였다. 유로존 존속 가능성을 점치는 알프레도 파스토르 스페인 나바라대 교수(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조차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주변부 국가들이 부유한 핵심국가들을 따라 추격발전을 할 수 있을지 여부"라 진단할 정도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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