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하면 보름달이다. 휘영청 밝은 둥근 달을 올려다보며 한 해 농사의 수확에 감사하고 소원을 비는 일. 감사와 기원은 인간이 자연 앞에 고개 숙이고 보일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자세다. 이 자세는 어떤 첨단 신문물이 기승을 부리든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인류사에 유구하게 존속하며 하나의 의식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는 중추절이면, 감사와 기원의 자세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달을 베어 먹고 싶은 소망을 담아, 달떡을 빚어 먹는다.
추석에 달떡을 먹는 풍습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음력 8월 15일을 각각 중추절(仲秋節)과 십오야(十五夜)라는 이름으로 기리며 보름달 모양의 웨빙(月餠)과 츠키미당고(月見團子)를 만들어 먹는다. 모두 송편처럼 달콤하고 윤기 흐르는 음식들로,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 때 먹는 떡이다. 세 나라의 풍습이 신기하도록 닮았다.
삼국의 달떡은 여름의 긴 노동 끝에 맛보는 소박하고 달콤한 사치였다. 올해는 조금 더 지평을 넓혀 송편뿐 아니라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의 달떡까지 만들어 먹어보면 어떨까. 각국의 추석 문화와 떡 맛을 비교해보며 가족들끼리 휘황한 보름달 아래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보는 것도 색다른 추석을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요리연구가인 이보은 쿡피아 대표와 함께 한국의 삼색 꽃송편, 중국의 웨빙, 일본의 츠키미당고를 만들어봤다. 이름하여 중추절 달떡 삼국지. 한 입 베어 문 삼국의 달떡들은 각기 다른 질감으로 입안에서 터지며 달콤한 향내를 퍼뜨렸다. 달은 달고도 풍성했다.
차면 기우는 법, 반달떡으로 더욱 융성하게…송편
우리나라의 송편은 추석에 먹는 대표적인 절식(節食)이다. 멥쌀가루를 익반죽해 풋콩, 깨, 밤 같은 소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빚은 후 솔잎을 켜켜이 얹은 시루에 찐 떡이 송편이다. 소나무 잎을 넣어 찌기 때문에 '소나무 송(松)'자에 '떡 병(餠)'자를 써서 '송병'이라 부르던 것이 송편으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송편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김부식의 에 7월 보름부터 8월 보름까지 한 달간 '가배(嘉俳)'라는 이름 아래 왕녀들이 베짜기 경기를 해 이긴 쪽이 진 쪽에 술과 떡 등 음식을 내어 함께 즐겼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부터 성했던 풍습인 듯하다. 조선조의 세시풍속서인 와 가사 에도 송편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 중국의 웨빙과 일본의 츠키미당고가 둥근 보름달 모양인 데 반해 유독 우리나라만 반달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은 이유는 뭘까.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보름달은 이미 차 기울 일만 남은 반면 반달은 앞으로 더욱 융성할 여지가 있는 달"이라며 "우리 조상들은 둥근 보름달처럼 더욱 성숙하고 풍성해지라는 뜻에서 반달 모양으로 송편을 빚어 먹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에는 백제 의자왕 때 궁궐 땅 밑에서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고 쓰인 거북등이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다. 의자왕이 부른 점술사는 '백제는 만월이라 이제 국운이 기울 것이나, 신라는 반달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융성해져 만월이 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예언대로 백제는 망했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이때부터 신라 사람들이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었다는 얘긴데, 가배가 신라에서 비롯된 풍습임을 떠올리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송편은 소를 넣고 접기 전에는 보름달 모양이라는 점. 송편 한 개에 달의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조상들의 지혜가 심오하다.
하늘에 뜬 둥근 달을 베어 먹다… 웨빙
흔히 월병이라 불리는 웨빙은 중국의 전통 명과로, 밀가루 반죽 속에 팥으로 만든 소와 말린 과일을 넣어 구운 과자를 말한다. 한국 못지않게 거방지게 음력 팔월 보름을 쇠는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중추절 음식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웨빙을 사려는 사람들로 백화점과 과자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쌀가루가 아닌 밀가루로 빚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보름달 모양의 빵 안에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을 꿀에 버무린 달콤한 속을 채워 넣는다는 점이 송편과 유사하다.
웨빙은 중국 남송시대부터 내려왔다. 본래 밤 수박 배 감 등 둥근 과일과 곡식을 함께 상에 올려 달에 제사를 지낼 때 바치는 음식이었다. 요즘은 가까운 이웃과 나눠 먹고 행복을 빌어주는 의미를 지닌 음식으로, 직접 만들기보다는 사다 먹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중추절이 지나면 파는 곳이 별로 많지 않다.
송편처럼 웨빙도 옛사람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들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영양과다가 가장 심각한 질병 중 하나인 요즘은 중국에서도 기름기를 쫙 뺀 '웰빙월병'이 인기다. 집에서 웨빙을 만들 때는 기존 설탕과 기름 대신 맛은 그대로지만 몸에 건강하게 흡수되는 자일로스 설탕이나 올리고당 등을 사용해 만들어보는 게 좋겠다. 백설이 6월 출시한 자일로스 설탕은 코코넛에서 추출한 자일로스 성분이 설탕 분해효소인 수크라아제의 활동을 억제에 설탕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줄여주는 설탕으로, 감도는 일반 설탕과 똑같다.
입안에 문 보름달, 하늘에 뜬 보름달… 츠키미당고
일본의 중추절은 십오야라고 부른다. 오곡을 수확하는 이 때, 일본에는 달을 감상하며 츠키미당고를 먹는 풍습이 있다. 당고는 일종의 쫀득쫀득한 경단으로, 찹쌀을 송편보다 작은 크기로 동그랗게 빚어 달콤한 고물이나 시럽 등을 끼얹어 먹는 음식이다. 츠키미(月見)는 '달 구경'이라는 뜻으로, 츠키미당고는 음력 8월 보름 달 구경을 하며 먹는 당고를 일컫는다.
중추절이 민족의 대명절인 한국, 중국과 달리 일본의 십오야는 단출하다. 본래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추수의 감사를 올리던 십오야는 일본이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음력 대신 양력을 채용한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히 쇠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기를 양력에 따라 지내는 일본은 전통의 중추절을 대신해 음력 7월 15일에 해당하는 양력 8월 중순의 일주일간을 조상들을 추모하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민속절기로 지내는데, 이 날을 오봉(お盆)이라 부른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성객들과 나들이객들로 도로와 항공, 철도 교통이 모두 대만원을 이뤄 한국의 추석 귀향길 못잖은 대이동이 이뤄진다. 이때도 일본 사람들은 츠키미당고를 먹는다.
하지만 음력 8월 보름의 전통은 조촐하나마 면면히 남아 달을 감상하며 츠키미당고를 먹는 풍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롯본기힐즈나 도쿄타워 등 야경으로 유명한 곳에서는 음악 공연 등의 이벤트가 해마다 열려 달 구경 인파들이 몰린다. 츠키미당고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방에서는 동글동글한 하얀 경단을 간장소스나 깨에 찍어 먹는 반면,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에서는 길쭉한 모양의 당고에 팥앙금을 얹어 먹는다.
올 추석에는 어느 지역에서 먹는 달떡이 가장 달콤하고 풍요로울까.
◆한국의 추석 요리-삼색 꽃송편
-재료: 맵쌀가루 10컵, 소금, 뜨거운 물 2컵, 쑥즙 1큰술, 치자 우린 물 1큰술, 백년초 가루 탄 물 2큰술, 참기름 약간
-송편소 재료: ①찐 밤 10알, 자일로스 설탕 2큰술 ②깨소금 5큰술, 자일로스 설탕 2큰술, 계피가루 약간 ③콩가루 5큰술, 자일로스 설탕 1큰술, 계피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맵쌀가루는 소금과 함께 체에 쳐서 4등분한다.
2. 4등분한 맵쌀가루 중 한 무더기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흰색으로, 나머지 세 무더기는 각각 쑥즙, 치자 우린 물, 백년초가루 탄 물을 뜨거운 물에 적당하게 타서 익반죽한다.
3. 밤은 껍질째 씻어 쪄 낸 뒤에 반을 잘라 작은 찻숟가락으로 밤 속만 떠내 자일로스 설탕을 넣어 곱게 으깬다.
TIP! 밤은 껍질째 삶아야 단맛이 살아난다. 거의 삶아지면 물을 따라내고 센 불에서 흔들며 밤의 수분을 날려 익힌다. 그래야 설탕을 넣었을 때 수분이 생기지 않아 송편소가 질척이지 않는다.
4. 깨소금은 설탕과 계피가루를 넣어 고루 섞는다.
5. 콩가루에 설탕과 계피가루를 넣고 잘 섞어 마른 팬에서 한 번 볶아낸다.
TIP! 마른 콩가루에 설탕을 넣어 실온에 두면 자칫 수분이 생겨 콩가루가 엉길 수 있다. 이럴 때는 콩가루에 설탕을 섞어 계피가루와 함께 마른 팬에서 한 번 고슬고슬하게 볶아 수분을 날린 뒤 송편소에 넣으면 좋다.
6. 떡 반죽을 떼어 오목한 홈을 만든 다음 소를 한 가지씩 알맞게 넣고 갸름한 모양으로 빚는다.
7. 찜통에 김이 충분히 오르면 송편을 넣고 반투명해질 때까지 20분 정도 찐다.
8. 쪄낸 송편은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참기름을 약간 탄 물을 고루 발라 채반에 담아둔다.
◆일본의 십오야 요리-츠키미당고
-재료: 찹쌀 2컵(찹쌀가루를 쓸 때는 2컵 반), 소금, 물 약간, 대나무 꼬치 약간
-간장설탕시럽 재료: 간장 3큰술, 자일로스 설탕 6큰술, 올리고당 2큰술, 물 1/2컵, 맛술 1큰술
-당고 고명 재료: 호두50g, 팥100g, 자일로스 설탕 100g
-만드는 법:
1. 찹쌀은 물에 충분하게 불려 방앗간에 가서 곱게 빻아 온다.
2. 빻은 찹쌀을 체에 내려 소금과 약간의 물을 넣어 반죽한다. 쫀득쫀득한 반죽이 되도록 많이 치대준다. 너무 되거나 질지 않도록 물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3. 반죽?완성되면 사방 2㎝ 크기로 떼어내 동그랗게 경단을 빚는다. 끓는 물에 경단을 넣어 떠오르면 재빨리 건져 찬 얼음물에 헹궈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4. 냄비에 간장과 설탕, 올리고당, 맛술, 물을 넣고 끓여 걸쭉하게 조린다.
TIP! 뭉근하게 조려 달콤한 맛이 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설탕 사용이 부담스럽다면 몸의 설탕 흡수를 줄여주는 설탕이나, 식이섬유가 풍부한 올리고당 등을 사용해 보다 건강하게 단맛을 낼 수 있다.
5. 팥은 깨끗하게 씻어 냄비에 물을 붓고 삶다가 물은 따라내고 다시 물을 붓고 끓인다. 팥 알갱이가 손으로 비볐을 때 살짝 물러지면 물을 따라내고 설탕을 넣어 약한 불에서 주걱으로 저어가면서 달달한 팥고명을 만든다.
TIP! 팥은 첫 번째 삶은 물을 버려야 독성이 없다. 팥이 적당하게 물러지면 남은 물을 따라내고 설탕을 넣는다. 팥에 설탕 맛이 배도록 주걱으로 저으면서 고슬고슬하게 볶아준다.
6. 호두는 미지근한 물에서 헹궈 건져 물기를 없애고 마른 팬에서 한 번 볶아 굵게 썬다.
7. 당고에 대나무꼬치를 꿰어 접시에 담고 간장설탕시럽을 끼얹은 다음 호두를 섞은 팥고명을 올려 낸다.
◆중국의 중추절 요리-웨빙
-재료: 박력분 300g, 식물성기름 70g, 베이킹파우더 3g 흰 앙금 3큰술, 중력분 약간, 달걀노른자 1개분(광택용), 자일로스 설탕 100g, 생수1/4컵, 달걀노른자 2개분(반죽용)
-웨빙 팥소 재료: 흰 앙금 200g, 팥 앙금 200g, 건포도 50g, 땅콩 50g, 호두 50g
-만드는 법:
1. 설탕을 유리볼에 담고 생수를 부어 잘 섞은 다음 뜨거운 물을 담은 볼 안에 담아 중탕해서 녹인다.
TIP! 웨빙은 아주 달아야 제맛이다. 그래서 설탕을 박력분의 반 정도로 많이 넣는데, 몸의 설탕 흡수를 줄여주는 자일로스 설탕을 쓰면 달콤한 맛은 살리면서 몸에 좋은 웨빙을 만들 수 있다. 설탕물을 중탕할 때는 조심스럽게 거품기로 저어준다.
2. 반죽용 달걀노른자를 풀어 체에 한 번 내린다. 식물성기름을 넣어 거품기로 잘 섞는다.
3. 중탕으로 녹인 설탕에 2의 달걀, 식용유를 넣고 잘 섞는다. 이것을 유리볼에 몇 숟가락 담고 흰 앙금을 넣어 잘 섞이도록 젓는다. 그래야 기름에 엉기지 않고 앙금이 고루 퍼진다.
4. 3의 반죽물을 얼음물 위에 올려 차갑게 식힌 다음 베이킹파우더와 체에 두 번 내린 박력분을 넣고 자르듯이 섞어 반죽한다. 살짝 진 듯하게 반죽이 되면 비닐에 담아 냉장고에 30분 정도 넣어둔다.
5. 흰 앙금과 팥 앙금을 각각 볼에 담고 껍질 벗긴 건포도, 굵게 다진 땅콩과 호두를 넣어 고루 섞는다. 손에 중력분 가루를 묻혀 직경 2cm 크기 완자 모양으로 빚는다.
6.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어 직경 2.5㎝ 크기 완자를 빚어 납작하게 만든 다음 앙금 완자를 가운데 놓고 동그랗게 감싸고 중력분 가루를 손에 발라 살짝 묻혀 놓는다.
7. 웨빙틀(틀이 없으면 볼록볼록한 양각 무늬가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도 된다)에 찍어 모양을 만들어서 유산지를 깐 오븐 팬에 늘어 놓는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밀가루를 없애고 물기가 마르면 광택을 내기 위해 붓에 달걀노른자를 묻혀 윗면만 펴 바른다.
8.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20~25분 정도 윗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