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대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든다면서 정작 연구비는 여러 명이 똑같이 나눠 N분의 1로 갖는 분위기가 있어요. 과연 선택과 집중이 되겠습니까."
김용민(58) 포스텍(포항공대) 신임 총장은 7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톱 대학으로 가려면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며 "성과가 좋은 분야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수월성 문화를 정착하겠다"고 밝혔다. 교수들끼리 연구비를 나눠 가지면 당장은 좋아도 장기적으론 경쟁력을 해친다는 판단에서다.
김 총장은 "세계 수많은 대학이 집중 투자한다고 한 분야를 보면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생명공학기술(BT), 에너지로 다 똑같다"며 "이중에서도 어떤 세부분야에 중점을 둘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BT만 해도 줄기세포, 항암물질 등 수많은 분야 가운데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 때 교수들의 '통 큰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기 분야가 아니어도 밀어줘야 합니다. 어려운 결정이겠죠. 그래도 학교 수준이 올라가 우수한 학생이 연구실로 오면 자신도 도움을 받는 거니까 도와줘야죠."
그는 "세계적으로 대학에서 기업과 대학의 산학협력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한국에선 둘이 갑을관계로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대학이 기업의 연구 과제를 받아 기술을 개발해도 이 기술의 저작권은 대학이 갖는다. 과제를 발주한 기업은 기술을 사가는 우선권만 있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연구를 한다. 실제 그는 미국에서 2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히타치, 독일 지멘스와 함께 초음파진단기기를 상품화했다. 반면 한국에선 기업의 연구 과제를 받은 대학은 어디까지나 '용역'에 그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총장은 "정부가 나서서 이런 분위기를 바꿀 정책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텍이 아시아 톱 수준의 대학이긴 해도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려면 갈 길이 멉니다. 그렇다고 가시적인 성과에 매달려 보여주기 식 정책은 하지 않을 계획이에요. 수월성 문화를 정착하고 기업과 원활히 협력한다면 10~20년 뒤 한국 과학의 전망은 지금보다 더 밝을 겁니다."
5일 취임한 김 총장은 197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전자공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82년부터 미국 워싱턴대 전자공학과 교수를 지낸 의료영상 분야의 권위자다. 포스텍 교수가 아닌 외부인사가 총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기는 4년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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